외줄타는 아이

by 조모비

진성은 끝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모비는 소장이 오고 간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미가 300만 원으로 어떻게 이사를 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이전에 살던 아파트가 따뜻한 편이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체감했다. 2층 주택으로 이사를 가자 화장실에서 샤워하거나 머리 감는 일이 무척 고통스러워졌다. 아파트보다 외풍이 심했고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언제나 커튼을 내렸으므로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나오면 일단 커다란 사전으로 눌러놓은 뒤 뒤처리는 나미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집이 더 좁아졌기 때문에 한 방 가득 차지하던 침대를 버리고 라꾸라꾸 접이식 침대를 사서 모비와 동생 둘이 꼭 붙어 함께 잤다.


1층의 주인 식구들은 넓은 대문을 쓰고, 모비네는 열자마자 계단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을 사용했다. 마당 한 구석 밟지 않아도 사납게 짖는 주인집 개 때문에 모비는 계단마저도 벽에 바짝 붙어 오르내리는 것이 서러웠다. 2년 뒤 한 번 더 다른 주택으로 이사를 갔고 한참 후에 30년도 넘은 복도식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했다. 화장실이 이전만큼 춥지 않다는 것만으로 모비는 좋았다. 나미는 넓은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 수 있어 좋았다. 모비 동생은 거실에 햇볕이 들어오는 것이 좋았다.


나미는 옷가게를 외곽 동네의 쓰러져가는 건물로 옮겼고 '여기서 장사가 되나?' 싶은 곳에서 10년을 버텼다. 그런 후에야 이전 동네로 다시 가게를 옮겼다. 그동안 진성은 여전했다. 일이 터지면 잠적했고, 마무리되면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여전히 모비와 동생에게 다정했고, 큰집과 성묘에 데려갔고, 가끔씩은 누구인지 소개하지 않은 채 여자를 데려왔다.


"누구세요? 우리 아빠 여자친구예요? 저는 아줌마랑 같이 밥 먹기 싫어요."

모비는 한 번도 이렇게 묻지 못했다. 진성과 다시 연락이 끊기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진성은 언제나 서운한 게 많았다. 타지에서 힘들게 일하는 자신에게 딸들이 자주 연락하지 않는 것, 가끔 광주에 내려갔는데 교회에 간다며 원하는 시간에 만나주지 않는 것, 가끔씩 모비가 큰집에 가기 싫다고 할 때나 사촌들을 만나기 싫다고 할 때도, 아빠 대신 요양병원에 가서 할머니를 뵙고 오라는 말에 볼멘소리를 할 때에도 진성은 서운했다.


그럴 때마다 어린 진성은 연을 끊자고 했다. 아빠 없다고 생각하고 잘 살라고 했다. 그러나 더 어린 모비에게 아빠를 잃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전해야 하는 비밀이 있었다. 서로를 잃으면 아빠와 자식 중 아빠가 더 손해라는 사실도 더 어린 모비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모비는 천장 높이 매달린 줄을 타는 광대가 되기로 했다. 나미도 진성도 서운하지 않게 아주 세심하게 균형을 잡았다. 장대가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진성과 나미 둘 중 한 명은 떨어지고 말 것 같았다.


모비 자신이 줄 위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때면 동생을 떠올렸다. 애틋한 동생. 보호하고 싶은 또 다른 나. 어차피 누군가 상처받아야 하는 운명이라면 동생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모비는 자기 방식대로 나미와 진성과 동생을 보호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어린 보호자가 되었다.


아이 어른으로 사는 일은 다른 어른들을 속상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 깊은 눈빛을 알아본 어른들은 모비를 더 사랑해 주었다.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막상 모비가 어른이 되어야 할 때는 몸만 자란 아이가 되어버렸다. 끊임없이 보호받고 싶었다. 클리셰 범벅인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위험할 때마다 남자 주인공이 기가 막히게 나와서 도와주고 보호하는 판타지 속에 자신을 대입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그리고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보호자 역할을 그만두고 싶었다. 이제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싶었다. 그때 한 남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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