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회사는 문서 양식을 사용합니다. 양식 종류와 형식에만 차이가 있을 뿐 각 회사 고유의 양식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임직원들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양식에 따라 문서를 작성하고 결재합니다. 이 양식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관성에 따라 지금까지 써 오던 것을 계속 사용할 뿐이니까요. ‘회사가 체계가 없다,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사장들도 양식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양식은 회사에서 필수적인 의사전달 수단입니다. 회사가 사용하는 양식을 잘 들여다보면 조직, 결재 체계, 업무방식, 업무 프로 세스를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양식에서는 조직문화까지도 엿보입니다. 양식에서 현재 회사의 업무방식이나 시스템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양식을 개선하게 되면 회사의 시스템이 변화하게 됩니다. 하지만 책상 앞에 앉아서 양식만 그려서 배포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선을 위해서는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 조직체계 등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모든 사항을 감안해서 양식을 개선해야 하고 필요하면 양식을 새로 만들기도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회사의 양식을 바꾼다면 회사 시스템 개선의 절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양식이 업무방식이나 시스템을 얼마나 많이 반영하고 있는지 필자의 경험을 통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기획 업무로 입사를 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입사 후 처음 접했던 양식이 어떤 회사나 사용하는 ‘지출결의서’였습니다. 일반적인 양식 크기인 A4 용지의 절반인 A5였습니다. 게다가 결재 란은 회사의 모든 직급이 표시되어 9칸이나 되었으며 양식에 경리 용어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 회사는 과거의 경리 업무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고, 조직 체계가 복잡하다 보니 이 같은 양식을 사용했던 겁니다. 다른 양식들도 회사의 업무 흐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거의 모든 양식이 관리(경리) 팀 입장을 반영해서 작성되다 보니 사용자들은 이해도 작성도 힘들어했습니다.
이후 근무한 회사의 경우에도 사용하는 양식들에 결재 란이 많았습니다. 회사 인원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그중 특이한 양식이 주문 시 공장에 제작을 의뢰하는 ‘주문서’였습니다. 그때까지 본 가장 복잡한 양식 중 하나였습니다.
양식이 복잡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죠. 팀 간 의사소통이 안된다는 겁니다. 공장으로 전하는 ‘주문서’에 특이사항, 기타 사항, 비고 등이 많다는 것은 제품 표준화가 안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결재 란이 많다는 것은 조직체계가 이상하다는 것이죠. 전체적인 양식의 구성도 뭔가 타 팀에 책임을 전가하는 형식을 띠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서울 영업팀과 지방의 공장 직원들이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를 위해 답변과 사인을 해서 팩스로 왕복 교환하고 있더군요.
일부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회사의 양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하고 있는 양식에서 업무 방식이나 조직체계, 의사소통 체계, 조직 문화까지도 대충 알 수 있습니다. 회사의 체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일단 양식을 검토하고 개선하는 것이 좋습니다.
양식을 새로 만들거나 변경하여 회사 시스템 개선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첫 째는 회사의 현 상황을 점검하고 파악하는 것입니다. 현재 조직의 구성과 형태, 직책과 직급 구분 여부, 업무 프로세스, 보고 형태 등 다양한 부분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제·개정된 양식이 회사의 업무에 맞게 스며들 수 있습니다.
둘 째는 사업의 성격이나 업무 프로세스에 맞게 만들어야 합니다. 양식 중에는 고객이 작성하거나 팀 간의 업무에 필요한 양식도 있습니다. 사업의 성격이나 업무 프로세스에 맞추어야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고 혼란을 줄입니다.
셋 째는 결재권자가 핵심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사용자는 작성하기 쉽게 만들어야 합니다. 양식이 너무 복잡하거나 특정 팀 위주로 만들면 안 됩니다. 누가 보더라도 쉽게 내용이 파악되고 작성이 편해야 합니다.
넷 째는 양식을 만들고 관리하는 주체는 하나여야 합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양식을 팀 별로 만들고 변경하는 회사가 있는데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각양각색의 양식이 난무하게 되고 자신들이 보고하고 싶은 내용만 보고할 수 있는 거죠.
다섯 째는 양식 제∙개정 전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충분히 검토해야 합니다. 본인들이 보고 싶은 경영지표 또는 핵심사항이 반영되었는지 검토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잦은 개정이 발생하게 됩니다. 규칙에 대한 잦은 개정은 직원들에게 신뢰를 줄 수가 없습니다.
여섯 째는 직원들이 임의로 양식을 변경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실제로 양식에 대한 불편함이나 미진한 점은 그 업무의 담당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죠. 만약 양식에 문제가 있다면 담당자가 임의로 변경하지 말고 관리하는 팀에 수정 요청을 하여 공식적으로 변경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동물입니다. 본인들이 사용하는 양식이 아무리 불편하고 불합리하더라도 뭔가 바뀌는 것을 싫어하죠. 그러니 양식 배포 전 충분히 취지를 설명하고 사용에 대한 유예 기간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전자결재도 많이 이용하나 결국 양식을 온라인으로 옮겨서 사용하는 것일 뿐이죠. 양식 개선이 시스템 개선의 효과가 있다면 전자결재는 효과가 배가 됩니다. 전자결재 도입 시에도 양식은 반드시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반영하여 적용해야 합니다.
양식을 새로 만들거나 개선한다면 회사 시스템 개선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관심 없이 지나쳤던 양식에 이와 같은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지금 바로 회사의 양식을 모두 꺼내어 검토해 보시길 바랍니다. 양식에서 많은 문제점을 파악하여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시스템코디(조현우)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