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에 걸려 죽다

by 백경

가을볕이 한창이었다. 산등성이를 널뛰던 15만 볼트짜리 고압전선이 감전사한 고인 머리 위에서 유독 낮게 지났다. 잣나무 가지를 장대로 헤치다 욕심을 부려 좀 높이 뻗은 게 화근이었다.


한전에 연락해서 주변 전력을 차단하고 접근했다. 고기 타는 냄새가 났다. 시신에 자동 제세동기 패치를 붙이고 2,3초 기다리니 심전도 리듬이 나타났다. 미동도 없이 한 일 자로 흘러가는 평행선. 전문용어로 Asystol. 무맥. 우리끼리는 ‘시체는 못 싣습니다.’ 야박해 보이는 규정이지만 숨이 넘어간 몸뚱이는 사실 술 취해 쓰러진 사람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온몸에 토사물을 묻히고 주먹을 날려대는 주취자들도 어디 다쳤으면 병원 이송은 해 줘야 한다는 게 룰이다. 하지만 시체는 안 된다. 하물며 이 건처럼 온몸에 검붉은 반점과 강직이 나타났다면 심장이 멈춘 지 적어도 3시간 이상 되었다는 의미다. 그럼 나라님의 시체라도 못 싣는다.

사람들이 밑에 거 다 따가니까 위에 거 따려다가 사고 나는 거지.

신원 미상이래요.

외노자?

그런 것 같아요.

불법체류자를 데려다 일을 시킨 거라면 고용주는 아마 모르쇠로 할 것이다. 미지급한 급여라도 있었다면 내심 쾌재를 부르지 않을까.

저녁밥이 유독 달았다. GPS 좌표만 가지고 요구조자를 찾아야 하는 골치 아픈 산행 뒤인 데다 좋아하는 두루치기가 나와서 개 밥그릇 핥듯 식사를 해치웠다. 누군가는 사람이 죽는 걸 보고 맘 편히 밥이 넘어가느냐 따지겠지만 그렇게 치면 n년 차 구급대원인 나는 진작에 굶어 죽었다. 밥통에 실컷 밥을 때려 넣고 나니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났다. 대신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가득 부어 알커피를 타 마셨다. 속이 조금 편해졌다.

지나간 죽음은 곱씹지 않는다. 잣나무에 걸려 죽은, 재수가 없어도 뒤지게 없는 신원미상의 외국인 노동자도 며칠 뒤면 습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질 것이다. 나는 최근 몇 년간 늘 이런 식이어서 재작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쩐지 데면데면한 마음이 되어 눈물이 나질 않아 애를 먹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장례가 끝나고 할머니 혼자 살던 집에 잠깐 들렀을 때, 그도 근처에서 막국수를 원 없이 먹고 난 뒤에 와이프 앞에서 등신 같이 펑펑 울었다. 몇 년 못 울은 걸 그날 다 울었다.

마주하는 모든 죽음에 눈을 빼앗기면 마음이 남아나질 못한다. 그래서 출동부터 귀소까지 머릿속에 주문처럼 뇐다.

내 가족 아니고 내 친구 아니다.

그게 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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