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언럭키

by 백경

내 아버지는 국유림관리소에서 임도관리원으로 일하신다. 덕분에 임도 관리를 하는 중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종종 들을 일이 있는데, 심심찮게 화두에 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이다.

국유임도는 기본적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동호회는 저마다의 절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임도를 불법으로 점유하곤 한다. 산 정상에서 새봄 맞이 시 낭송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거대 노봉방(장수말벌 집)이 자리 잡은 곳 몇몇을 눈여겨보았다가 적당한 크기가 되면 한꺼번에 쓸어가기도 하고, 임도 주변 잔디밭에서 술판을 벌이다 손에 잡히는 독버섯을 자연산 송이로 착각해 안주로 집어먹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 산에 간 OO동호회란 말만 꺼내도 내 입꼬리는 슬슬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날엔 출동 지령서가 그 누군가를 대신해 주었다.


산악자전거 동호회. 자전거에서 떨어졌다. 자고 있다.


당장 머릿속엔 술에 만취해 자전거로 임도를 질주하다 넘어진, 넘어진 김에 잠들어 버린 모 씨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 중 열에 하나는 중증임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에 마냥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지령서 끄트머리에 '자고 있다'라는 말이 거슬렸다.


구급차로 GPS 값을 찾아가니 정확한 사고지점까지 수 백 미터를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임도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두었는데 그 위쪽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바리케이드 바깥쪽으로 동호회 회원 몇이 나와 안내를 해 주었다. 들것과 외상 처치용 가방을 들고 한참을 올라갔다. 산 길 중간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나타났다. 실제로 구급대원과 조우하는 것이 신기한 건지 신이 난 건지 연신 웃는 얼굴의 남성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저 쪽에 누워 있어요. 자요, 자.

잔다고요?

네. 푸우, 푸우 하면서.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말을 건넨 남성의 입에서 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임도 위를 자전거로 달리는데 어지간해선 술 마실 마음도 먹지 않을 것 같았다. 자전거가 널브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옆에 가지런하게 누워 잠을 자듯 숨을 쉬는 남자가 있었다. 상의에 매달린 플라스틱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럭키 최


이름이 아닌 인터넷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럭키 최의 상태는 그의 닉네임이 주장하는 바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았다. 별다른 외상은 없었지만 쇄골을 잡아 꼬집고,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계속 잠을 잔다는 건 문제가 컸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주문을 외며 경추보호대를 착용하고 긴 척추 고정판에 몸을 고정하는데, 슬슬 럭키 최의 눈가에 시퍼런 색이 떠올랐다. 교재에서만 보던 라쿤 아이(Racoon Eyes:너구리 눈) 현상이었다. 라쿤 아이는 뇌를 받치는 기저골의 골절을 의미하고, 이는 곧 뇌 손상과 직결된다. 엄청 피곤했었나 보네. 그쵸? 되는 대로 뇌까리는 남자를 보고 화가 치밀었지만 곧 마음을 진정시켰다. 반듯이 누워 잠을 자듯 하는 사람을 두고 일반인이 기저부 골절을 의심한다는 건 실현 가능성 없는 판타지다.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럭키 최를 짊어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동호회 회원 몇이 들것의 남는 손잡이를 잡고 이송을 도와주었다. 사람들의 얼굴엔 걱정보다 후련함이 가득해 보였다.


도내의 권역응급의료센터급 병원에 럭키 최를 이송했다. 소방서로 귀소 하는 도중 그의 가슴에 매달린 플라스틱 명찰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람에 공상에 빠져들었다.


럭키 최의 인생은 얼마나 럭키했을까. 혹 너무 언럭키 한 삶을 살아서 굳이 럭키를 가져다 닉네임에 기워 넣은 건 아닐까. 아니면 정말 평생 재수 좋은 일들만 가득이라 자타공인 럭키 최로 이름을 떨쳤고, 머리뼈가 부서져 불구가 될 지경에 놓인 지금에서야 어느 소방관의 눈에 띄어 그 진위를 의심받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인생은 또 얼마나 럭키할까.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자전거를 타고 아침 운동을 하다 트럭에 치이는 바람에 평생 중증의 허리디스크를 안고 살게 된 건 분명 언럭키한 일이고, 방사통이 심해져서 잘하던 공부를 손에서 놓아버리고 운동에 시간을 쏟은 건 절반쯤 럭키한 일이고, 영화판과 연극판을 전전하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와이프를 만난 건 나에겐 행운이자 와이프에겐 불행의 시작이었다.


지난한 세월을 지나 우리 가족이 아내와 나 그리고 첫째와 둘째 네 식구가 되고, 말단이나마 나랏밥을 먹는 덕분에 끼니 걱정은 하지 않게 되고, 사랑이 많은 아내 덕에 아이들이 잘 웃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그러나 불행한 인생을 일반인보다 자주 마주하는 게 나의 숙명이다 보니, 인생 정점의 행운을 맛보고 있는 와중에도 늘 노심초사하는 삶 자체는 불행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럭키와 언럭키, 그 중간쯤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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