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간다

by 백경

눈 오는 산길을 십여 킬로쯤 달렸다. 한밤중인 데다 눈발이 쉼 없이 유리창을 때리는 바람에 평소보다 배는 시간이 더 걸렸다. 육십 전후로 뵈는 여성이 주소지로 통하는 길의 초입에서 구급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이 좁아서 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도보로 안내를 하기 위함이었다.

길은 며칠 내내 쌓인 눈으로 뒤덮여 이미 길이라고 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보급받은 아이젠(눈 위를 걷기 위해 신발에 덧씌우는 제품. 고무 틀에 스파이크가 달려있다)도 별 소용이 없었다. 정강이까지 눈이 차올라서 길을 걷는다기 보다는 길을 걷어차며 갔다. 신발을 비집고 들어온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엄지발가락의 감각이 무뎌질 즈음 목적지가 나타났다.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든 농막이었다. 출입문 쪽은 슬레이트를 얹어 처마를 연장하고 그 아래 나무 기둥을 찔러 넣었다. 눈이 쌓이는 바람에 무게가 실려 그런 것인지 애초에 비뚜름하게 시공을 한 것인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신고자가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문고리에 넣고 돌렸다.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서너 번 힘을 주어 당기자 문이 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지붕 주변으로 눈이 와라락 떨어졌다.

찬 기운과 함께 오래된 먼지 냄새가 콧구멍 안쪽으로 훅 끼쳤다. 수명이 다한 형광등이 수 초 간격으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고, 엉성한 벽체 틈으로 바람이 드나들며 사람이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차라리 빛 한 점 들지 않고 고요했다면 덜 을씨년스러웠을 텐데, 집은 마치 죽음의 그림자가 한 발쯤 걸치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안쪽은 널브러진 옷가지와 잡동사니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좌우를 둘러보아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출입문 우측에 놓인 책장에 눈이 갔다. 눈높이에 사진이 들어간 액자 몇 개가 진열되어 있었다. 노부부의 사진, 젊은 부부의 사진, 아기 사진, 다섯 사람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들이었다. 하나 같이 허옇게 빛이 바래고 습기를 먹어 울퉁불퉁했지만 다들 웃는 낯이라 어쩐지 짠한 기분이 들었다.


일어나요.


정적을 깨는 신고자의 말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방구석에 산처럼 쌓인 이불을 걷어내자 그 속에서 나이 든 남자가 나타났다. 더 늙고, 더 말랐지만 사진 속 노부부 중 남자가 분명했다. 남자는 신고자의 얼굴을 보더니 힘 없이 웃었다. 신고자가 인상을 쓰며 방 한 켠에 놓인 선풍기 모양 전열기를 찾아내 코드를 연결했다. 죽을 것 같다고 와 봤더니 아직 안 죽었네. 그녀가 전열기 주변에 놓인 쓰레기들을 멀찍이 치우는 동안 남자의 생체징후를 측정했다. 환자분,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세요? 남자가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먹지 말래도 이거 봐, 또 숨겨 놨어, 또. 신고자가 쏘아붙였다. 그녀는 어느새 방구석에 놓인 신발장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있던 1.5리터 들이 플라스틱 소주병 몇 개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은 뒤였다. 남자가 머쓱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폈다. 전열기 덕에 온기가 돌아서인지, 아니면 신고자의 염려 섞인 짜증 덕인지, 남자의 얼굴은 처음보다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 남편 분께서 지금 특별한 이상은 없으신 것 같아요. 같이 계시다가 혹시 상태 안 좋아지거나 하면 다시 신고 주세요.

저 집에 갈 거예요.

네?

같이 안 살아요. 이혼했어요. 그녀가 출입문을 열며 말했다.

가? 나이 든 남자가 묻자,

어. 짧게 답하고는 휘적휘적 멀어졌다.

바깥은 아까보다 굵어진 눈이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밤 사이 발자국도 다 사라질 것 같았다.




눈처럼 흰 뼛가루는 아직 뜨거웠다. 구릿빛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의 젊은 선장이 수영만 앞바다 1호 장지가 장인이 머물 곳이라 했다. 해양장을 지내기로 했는데, 그래 봐야 망망대해 한가운데였다. 장인의 유골은 반쯤은 바닷물에 녹아 흩어졌고, 나머지는 나와 아내가 탄 요트 곁을 지나던 바람이 채어 갔다.


다음에는 좋은 부모 만나!


비명처럼 소리친 아내는 소처럼 큰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을 몇 방울 흘리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어지간히도 남에게 기대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마땅히 이루어 놓은 게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했고, 마음을 좇지 못하는 몸의 노쇠함에 끝없이 절망했다. 다들 그래서 부둥켜안고 산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게 내 아내의 아버지가 죽을 마음을 먹은 이유였다.

장인의 시신은 집 근처 공원을 지나던 고등학생에 의해 발견되었다. 갈빗대 사이로 회칼을 찔러 넣어 정확히 심장을 꿰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죽음이라 현실감이 없었다. 품에서 발견된 유서엔 장모님 앞으로 명의를 이전해 놓은 아파트 및 기타 유산의 처리에 필요한 정보와, 내 꼬락서니를 견디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노라 하고 짤막한 변명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장인을 보내고 돌아가는 내내 아내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늦은 여름의 태양은 따사로웠고, 바람은 잔잔했다. 건너편에서 마주 오는 배 한 척에서 강한 비트의 댄스 음악이 들려왔다. 수영복 차림의 젊은 남녀 몇이 우리 쪽을 향해 마개가 열린 맥주병을 들어 올리며 무어라 소리쳤다. 그렇게 소란스러움이 스치듯 지나고 이전보다 더 깊은 고요가 찾아왔다.

길 없는 바다를 나아가는 배와 사람이 사는 모양이 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애써 삶의 의미를 만들고 발자취를 남겨보지만, 물결 같은 시간 앞에 힘을 잃고 영영 성장하지 못하는 우주의 미아인 채로 죽음을 맞는 것. 그 막연함이 너무 두려워서 엄마 품에 안겨 숨죽여 울던 어린 내 모습도 떠올랐다. 한참 상실의 바다를 유영할 즈음 내 손을 그러쥐는 아내의 손이 느껴졌다. 그건 힘을 내자는 신호 같기도, 살려달라는 신호 같기도 했다. 물안개처럼 부연 현실 속에서 오직 아내의 체온만 더없이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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