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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23. 2023

사랑은 복근으로 쓰세요

 옆에서 잠든 둘째가 뽀드득 이를 갈며 자는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두 시다. 습관처럼 한 손으론 티셔츠를 걷고, 다른 한 손으론 위아래로 배를 쓰다듬었다. 트레이너 하던 시절에 생긴 버릇이다. 잠들기 전 야식의 유혹을 잘 참아내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우리 직종 사람들의 명함과도 같은 그것이 무사한가 살펴보려는 몸짓이다. 복근이 건재한가 손끝을 더듬어 안부를 묻는다. 금주라 하기엔 기간이 짧아 뭐 하고 한 이 주 가까이 술을 마시지 않으니 잊고 지냈던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술을 멀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좋은 일이다.


 몸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 하던 질문이 있다. 선생님, 복근 만들고 싶으면 복근 운동 열심히 하면 되나요. 정답은 아니. 그랬다간 백만 번 죽었다 깨도 못 만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복근은 드러나는 게 부자연스러운 근육이다.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대개 복부에 주요한 장기를 품고 있고, 그것들은 근육 위에 덧씌워진 지방층이 보호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방층을 걷어내야 비로소 복근이 드러난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방을 걷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운동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제까지 달리기 만한 것이 없다. 열나게 달리다 보면 복근은 생긴다. 열나게 달렸는데 복근이 안 생겼다면 더욱더 열나게 달리면 된다. 선생님 저는 달리기가 싫은데요. 그럼 유명한 버피(Burpee) 테스트를 하루에 꾸준히 100개씩 하면 된다. 버피도 싫은데요. 그럼 복근도 너를 싫어할 거야.


 빠른 결실을 보려면 식조절도 필수다. 닭가슴살에 풀떼기만 밀어 넣는 방법은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않고,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은 적정량을 유지하되 좋은 지방으로 부족한 열량을 대체하는 식단을 추천한다. 조금만 공부하면 알 수 있는데, 좋은 지방은 살을 찌우지 않는다(이것도 이젠 상식에 가까워서 식상하다). 여하튼 달리기에 철저한 식조절이 더해진다면 하루하루 복근이 드러나는 것에 가속도가 붙는다. 정말 타이트하게 식단을 관리한다면 굳이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복근을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선생님 저는 그럼 철저하게 식단관리를 해 볼게요. 좋습니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식단 조절을 덜 타이트하게 하면서 운동을 겸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거예요.


 그렇게 개고생을 해서 얻어낸 복근은 예쁜 만큼 흔하지 않다. 이 분야에 전문가라 하는 트레이너들도 우람한 팔뚝과 마찬가지로 우람한 뱃살을 함께 가진 경우가 부지기수다. 선생님은 트레이넌데 왜 배가 나왔나요. 벌크업 중이에요. 그놈의 벌크업은 재작년도, 작년도, 올해도, 할 때마다 마지막이라고 되뇌던 김장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복근은 벌크업으로 얻어지는 근육이 아니라 오로지 커팅(지방을 걷어내는 걸 의미한다)으로만 드러나기 때문에, 벽돌을 쌓아 집을 만들듯이 단백질 셰이크와 근력 운동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복근을 만든다는 건 일종의 보물 찾기고, 조각의 영역이다. 걷어낼수록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는 섬세한 예술의 영역이다. 그래서 그것은 글을 적는 일과도 비슷하다.


 내가 적은 글 중엔 최대한 백 스페이스를 많이 눌러서 짤막해진 것들이 좋다. 가끔은 너무 짧아져서 불친절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또 나름 시적인 느낌이라 좋다. 웃옷을 걷어 손을 집어넣었을 때 군더더기 없이 꽉 들어찼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더없이 뿌듯하다. 마치 체지방을 3퍼센트대 까지 걷어낸 진짜배기 복근을 맞이한 듯하다. 더 걷어내면 몸이(글이) 생명을 잃겠구나 싶을 정도가 되었을 때의 짜릿함, 아주 날씬해질 때까지 녹아서 곧 부러질 듯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을 마주한 듯한 그 느낌을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세 여자와 함께 사는 집에서, 그것도 좀 둔감한 축에 속하는 내가 마음을 전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케케묵은 남자의 자존심과 아버지의 권위와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걷어내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일단은 부단한 달리기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고, 정신적으로 유익한 양식을 선별하는 내면의 다이어트 전문가로서의 혜안이 요구된다. 지방을 다 걷어내고 복근이 드러날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아직도 아내의 투정에 되려 내가 삐치고 뛰노는 딸들에게서 건강함보다 부산스러움을 느낀다. 날씬한 사랑을 보여주기엔 아직 다이어트가 잘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벌써 네 시 삼십 분이 넘었다. 말하는 걸 잊었는데, 복근을 만들기 위해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치면 운동이고 식단이고 실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노트북을 닫고 아이들과 아내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간다. 그곳이 나에겐 복근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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