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Mar 25. 2023

밥먹었니

 할머니를 한 분 태웠다. 두 아들이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아들들도 다 늙어서 이마가 벗어진 백발에 알이 두터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할머니는 오른손이 없었다.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작은 화분에서 나뭇가지가 뻗은 모양으로 보통 사람의 손가락 마디만 한 것이 세 개 붙어 있었다. 갓난아기 때 방안에 있던 화로에 손을 넣었다고 했다. 부러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이야기를 해주는 바람에 상상이 돼서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아팠다.


 노인들은 대개 전신쇠약을 이유로 신고를 한다. 소방서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전신쇠약이 병이냐고, 정작 급한 환자가 저런 노인네 때문에 구급차를 못 탄다며 비아냥거렸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오래 일하다 보니 정말 급한 출동보다 보통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출동이 더 많았다. 사람들은 내가 참혹한 현장을 견뎌내느라 맘고생 한다고 격려의 말을 건넸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감기가 심해서 부르고, 술을 많이 마셔서 부르고, 생리통을 견디기 힘들어서 부르고, 어떤 날은 너무 외로워서 구급차를 불렀다. 꼴같잖은 영웅심에 취해있던 나는 이게 다 국민의 세금이니, 인력낭비니를 운운하며 얼음 같은 눈으로 아픈 사람들을 보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뒤통수를 열 번도 넘게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려고 한다. 나는 소방서로 출근하는 보통 직장인이다. 영웅 소방관은 이제 개나 준다.


 할머니와 두 아들은 서로 가는 귀가 먹어서 얼굴을 거의 대일 듯이 하고 있었다. 머리 세 개가 할머니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셈이었는데, 그래도 잘 들리지 않는지 계속해서 뭐라고? 뭐라고? 를 뇌었다. 정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다. 거의 아들들이 말을 걸었고 할머니는 주로 대답을 했다. 그러다 병원에 도착할 즈음해서 할머니가 먼저 입을 떼었다.


뭐라고 엄마?

뭐라고?

아, 먹었지, 시간이 몇 신데. 엄마는 먹었어?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밥먹었니 하고 물어본 것 같았다. 하나 남은 왼손으로 어린 두 아들의 밥을 차리는 젊은 여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후 8시였다. 간호사가 와서 할머니가 가래가 있으니 잠시 구급차 안에서 대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짬이 난 김에 밖에 나와 첫째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 엄마를 닮아 그놈의 전화기는 어디 노상 처박아 두는지 한 스무 번쯤 신호가 간 뒤에야 받았다.


밥먹었니


하고 운을 떼고 야간 출근 전에 만들고 간 돼지갈비찜이 맛났는가 물으며 생색을 냈다. 요즘은 제법 사람 꼴이 나는 아이들을 대하는 게 점점 쑥스러워지는 기분이다. 사실 사랑한다 하려고 전화한 거였는데, 밥먹었니 만 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벤츠 아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