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Jun 20. 2023

벤츠 아리랑

 새벽이었다. 날빛이 주춤주춤 산등성이의 어둠을 물릴 즈음 고갯길에서 큰 사고가 났다. 중앙선을 넘어 커브길을 돌던 25톤 벤츠 트럭이 마주 오던 포터(1톤 소형 트럭)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말하자면 그건 바위로 계란 치기나 다름없었다. 태생이 엉성한 포터는 벤츠 트럭의 헤딩 한 방에 이가 다 나갔다. 타고 있던 운전자도 북어처럼 쪼그라들었다. 포터는 승용차처럼 운전석을 뒤로 물리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구조대원들이 운전자를 빼내는 데에 애를 먹었다. 유압전개기로 필러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늘렸지만 밀고 들어온 차체와 좌석 사이에 끼인 운전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유압 절단기에 동력 절단기까지 동원되어 차를 해체하다시피 했다. 끼어있는 사람도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작업 속도는 느렸다. 구조대원들이 작업하는 동안 수시로 환자의 생체징후를 측정했다. 다행히 출혈이 많지 않고 가슴 부위가 심하게 눌리지 않아 심폐기능은 안정적인 상황이었다. 다만 구겨진 차와 함께 구겨진 두 다리가 염려되었다.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걸 초조하게 지켜보는데 누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벤츠 트럭을 운전했던 남자였다. 차가 튼튼한 덕으로 그는 걸어 나올 수 있을 만큼 멀쩡했다.

 괜찮나요?

 일단 나와 봐야 알 것 같아요.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요.

 아아.

 잠깐 졸았는데 이렇게 됐어요.

 네.

 괜찮겠지요?

 기다려 보세요.

 며칠 너무 일이 많았어요.

 벤츠 트럭 운전자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친 사람 앞에서 그런 건 핑계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포터 운전자가 남은 삶을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도 좀 났다. 일이 많았으면 쉬지. 피곤했으면 잠깐 눈이라도 붙이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열악한 노동환경 덕에 졸면서 차를 몰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착잡해졌다. 누굴 탓하더라도 변하는 건 없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포터 운전자가 예전처럼 걷긴 어려울 것이다.


 마침내 운전자를 들것으로 옮길 수 있을 만큼 작업이 진행되었다. 문짝과 앞유리와 필러가 걸레처럼 뜯겨 나가서 포터는 골격만 남다시피 했다. 드러난 남자의 두 다리는 무릎 아래로 두어 번씩 꺾여 있었다. 부러진 뼈가 살점을 뚫고 나온 개방성 골절도 보였다. 지지하는 손을 놓치면 끊어질 것처럼 너덜거려서 조심스럽게 부목을 대었다. 동맥이 끊어지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포터 운전자는 고통 때문에 제대로 말도 못 했다. 식은땀만 흘렸다. 가까운 곳에서 벤츠 트럭 운전자가 경찰에게 아까와 비슷한 얘기를 구구절절 주워섬기고 있었다. 너무 피곤했어요. 일이 너무 많았어요. 경찰은 사무적으로 사고 상황을 묻고 메모할 뿐 사고를 당한 사람과 사고를 낸 사람의 불행에 굳이 공감하려 들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다리가 뭉개진 남자를 구급차에 싣고 고갯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출동하는 동안 짓쳐 오를 때는 몰랐는데 길은 어지간히 구불구불했다. 굽이가 더 많아진 것도 같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어지러운 내리막을 언제까지 내려가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려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