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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19. 2023

뛰는 꿀벌 위에 나는 말벌, 위에 먹는(?) 사람

 말벌주는 정력에 좋다.


 라고 남자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소문이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말벌이 씨가 마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양봉 농가에서 관리하는 꿀벌통에 말벌이 한 마리 들어간다. 꿀벌이 태권도 좀 하는 초등학교 6학년이면 말벌은 코너 맥그리거다. 마이크 타이슨이다. 꿀벌 100마리가 덤벼야 겨우 말벌 하나를 잡는다. 꿀벌이 말벌을 상대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인해전술로 압사시키는 건데, 말벌 한 마리에 꿀벌 수십이 달라붙어 체온을 45도 이상까지 올려서 말려 죽인다. 그러는 동안 말벌의 강한 턱과 이빨에 목이 잘리는 꿀벌도 많고 강철 같은 독침에 맞고 전사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도 한 마리면 어찌어찌 방어가 되지만 벌통에 말벌이 몇 마리만 침투해도 초토화다. 그냥 모아둔 꿀 가져가십쇼, 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가 따로 없다.

 말벌이 꿀벌에게만 위협적인가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말벌의 독은 꿀벌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쏘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워낙 독성이 강한 데다 꿀벌처럼 쏘고 나서 엉덩이에서 독침이 빠지는 식이 아니고 말벌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연달아 사람을 쏘아대기 때문에 제대로 걸리면 아나필락시스(급성 알레르기 반응)를 피할 수 없다. 온몸에 빨갛게 두드러기가 생기고, 기도가 좁아져서 숨이 막히며, 재수 없으면 동공과 혈관이 확장되면서 신경성 쇼크가 온다. 불 끄고 사람 구하기도 바쁜 소방관이 벌집을 따러 다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벌 자체가 사람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요소이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유독 벌집이 많아서 아침부터 예약을 받았다.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건수가 너무 많아 119에 벌집제거 신고가 들어온 순서대로 이동하면서 제거를 했다. 웨이팅이 길어 손님들 불만을 감내해야 하는 맛집 사장님들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이쪽은 그러나 저러나 버는 돈은 똑같다는 점은 달랐지만. 여하튼 벌집을 따러갈 때면 후임에게 꼭 일러두는 말이 있었다.

 사람들이 너한테 말 걸 거야.

 무슨 말이요?

 나는 안 된다고 할 거니까.

 네?

 벌집 따서 달라고 하는 거.

 아아. 벌집을 달라고 하나요?

 그럼. 소방관들이 따는 벌집이 진땡이거든. 사람한테 벌 날아갈까 봐 살충제도 안 쓰고, 수거용 비닐로 감싸서 한 방에 상처 없이 따잖아. 그래서 시골에는 탐내는 사람들이 많아. 술 담그려고.


 실제로 출동한 곳에 벌집이 여럿이라 정신없이 작업을 하다 보면, 작업을 한 횟수와 벌집이 담긴 비닐의 개수가 맞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혼란한 틈을 타서 훔쳐간 것이다. 그래서 사다리 위나 지붕 위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수시로 벌집을 쌓아 둔 아래쪽을 봐줘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나만 놓고 가지?

 안 됩니다.

 소방서에서 술 담그려고 그러나?

 안 담가요. 다 버립니다.

 에이 씨, 괜히 불렀네. 아깝게.

 한번은 아주 깊고 깊은 산골짜기 등산로를 지나던 사람이 신고를 했다. 그것도 등산로에 붙은 게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사람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위치였다. 그럼에도 신고를 했다는 건 안 봐도 사정이 빤했다. 장비를 짊어 메고 산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수박만 한 말벌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 따서 어떻게 할 거요? 도착하자마자 신고자가 물었다.

 폐기해야죠.

 에헤이! 안 될 소릴! 그냥 돌아가셔, 그럼. 그래서 그냥 돌아온 일도 있었다.

  

 노봉방주(말벌주)가 정력과 허리 통증에 즉효일 수도 있다. 말벌집에 알알이 박힌 애벌레를 들기름에 튀기면 먹어본 사람들 말처럼 산삼 못지않은 자양강장의 효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식약청에서 암만 먹지 말라고 권고를 해도 세대를 거쳐 내려온 민간의 믿음은 강력해서, 대한민국 사람들로 하여금 말벌이 멸종하지 않는 한 벌집을 보면 군침을 흘리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 욕심 때문에 소방관이 목숨을 걸 일은 없으면 좋겠다. 당신 먹을 벌집 딴다고 내가 죽으면 누가 책임지나? 설마, 벌더러 책임지라고 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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