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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ug 08. 2023

그녀는 반보씩 걷는다

 요양보호사가 신고를 했다. 돌보던 사람 오줌에서 아침부터 피가 섞여 나온다 말했다. 거동은 되시나요. 네, 움직이실 수는 있어요. 제 발로 걸을 수 있는 환자를 굳이 구급차를 태워야 하는가 잠시 생각하다 관두었다. 응급 환자, 내지는 스스로 걸을 수 없는 환자만 태우는 법이라도 있다면 지금 절반 정도의 구급차만 운용해도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조직은 구급차 수를 늘리고 비응급 환자라도 신고만 들어오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구급대 운영 방향을 잡은 것 같다. 불합리해 보이긴 해도 확실히 좋은 점이 있다. 가리지 않고 신고를 받다 보니 광고가 된다. 불이 났나요? 119를 부르세요. 물에 빠졌나요? 119를 부르세요. 아프신가요? 119를 부르세요. 여자친구랑 싸웠는데 연락이 안 되나요? 술 먹고 집에 들어가고는 싶은데 택시비가 없나요? 오늘따라 외로우신가요? 119를 부르세요.


 환자의 집은 시내에서 십 킬로쯤 떨어진 농촌에 있었다. 페인트가 다 벗겨진 콘크리트 외벽에 폴리카보네이트로 차양을 댄 이층 집이었다. 요양보호사가 환자의 짐을 챙겨서 문 앞에 나와 있었다.

 환자 분은요?

 저 쪽 계단에 앉아 계세요. 부축 좀 해주셔요.

 알겠습니다.

 건물을 좌측으로 끼고돌자 이층으로 통하는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은 길고 가팔랐다. 환자는 이층에서 몇 걸음 아래 계단참에서 난간을 붙잡고 앉아 있었다. 노인일 거라 생각했는데 웬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의 손을 붙들어 일으키며 물었다.

 환자분,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65년 X월 X일이에요.

 만 나이로 오십 여덟. 울 아버지 엄마보다도 한참 어렸다. 아직 젊은 분이 요양보호사까지 써 가면서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그리고 환자를 부축해 계단을 내려오면서 곧장 그 의문이 해결되었다.

 아주머니는 한 걸음에 한 칸씩 계단을 내려오지 못했다. 먼저 반보를 딛고, 계단 모서리를 발 끝으로 확인한 뒤에 같은 발로 다시 반보를 디뎌 계단 한 칸을 내려갔다. 이어서 반대 발로도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환자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뇌졸중 수술 하고부터 이래요.

 전혀 안 보이세요?

 네. 수술이 잘못된 것 같아요.

 그녀의 보조에 맞추어 계단을 내려가려니 아래쪽이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졌다. 느리고, 무거운 걸음이었다. 한참 만에 들것이 있는 곳까지 왔다. 들것을 의자 형태로 변형시켰다. 환자 스스로 들것에 오르질 못해서 허리춤을 움켜쥐고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어 위로 올렸다. 그녀가 미안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수술이 잘못된 것 같아요. 말하는 얼굴은 내 쪽을 향했지만 눈을 마주치진 못했다. 길 없는 어둠이 나와 그녀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매미 소리에 잠을 깼다. 푸르스름한 날빛이 커튼을 비집고 방 안을 비췄다. 아내가 옆에 잠들어 있었다. 엊저녁에 다투고 난 뒤 아내는 아이들 방에서, 나는 안방에서 잠들었다. 그렇게 서로 빈정 상해서 무어라 무어라 치사한 얘기를 주워섬겼는데, 옆에 와서 잠든 걸 보니 애들 방에서 자는 게 어지간히 불편했던 모양이다. 깨지 않도록 아내 쪽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한참 동안 얼굴을 봤다. 세상 편안하다. 어제 뭐 때문에 싸웠더라. 잘 모르겠고,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간다. 아내의 머리칼을 한 번 쓸어 넘긴다. 그러자 소처럼 큰 두 눈에 잠깐 불이 켜졌다가 스르륵 꺼진다. 돌이켜보면 당신이랑 싸워도 단 한 번도 당신이 보기 싫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영민한 회계사가 셈을 하듯 당신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본다. 새삼스럽지만 예쁘다. 언젠가 내 눈에 어둠이 내리기 전까지 오래오래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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