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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29. 2023

내가 당신의 심장을 누를 때

 주말 오후였습니다. 점심을 대강 먹는 바람에 허기가 져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컵라면 먹는 소방관은 불쌍해 뵈려는 쑈방관이란 말이 있어 부러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먹는 편입니다. 대기실 창문을 열고 창문틀에 물을 부은 컵라면을 올려 두었습니다. 다 익지도 않은 라면에 나무젓가락을 찔러 넣자마자 출동이 걸렸습니다. 당신의 심장이 멈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언덕배기에 기우뚱하게 자리한 낡은 멘션이었습니다. 남루한 외벽에 적힌 그린인지 블룬지 하는 이름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곧 당신 아들이 부랴부랴 낡은 SUV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정말 다급해 보였습니다. 계단을 네 칸씩은 뛰어 올라간 것 같습니다. 나도 양손 가득 소생장비를 들고 그 뒤를 따랐습니다.


 당신의 시아버지가 먼저 당신의 심장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심장이 자리한 곳을 잘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죽은 몸을 만지는 게 어색하고 무서운지 너무 조심히 눌렀습니다. 당신 아들은 곁에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시커멓게 죽은 당신의 애먼 손끝만 주물러댔습니다.

 두 분 다 비켜주세요. 목까지 덮은 당신의 웃옷을 걷어붙이다 여의치 않아서 가위로 잘라버렸습니다. 옷 아래 숨어있던 체온이 얼굴로 확 끼쳤습니다. 오른쪽과 왼쪽 젖가슴 가운데 단단하게 복장뼈가 자리한 곳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측 쇄골 아래와 왼쪽 겨드랑이 밑에 제세동기 패치를 붙였습니다. 기계는 당신의 죽음을 선고하듯 한 일 자 미동 없는 심장 리듬을 모니터에 그렸습니다. 그래도 눌렀습니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팔이 접히는 곳에 정맥주사를 찔러 넣고, 고개를 젖혀 숨길로 산소를 밀어 넣었습니다. 본부에서 대기하는 당직의사에게 실시간으로 조언을 구하며 소생술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나를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 있는 당신 아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구식 아파트인 데다 계단은 너무 좁았습니다. 당신을 들것에 싣고 내려오는 동안 계단벽에 등이 쓸려서 페인트와 먼지로 온통 하얗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구급차에 싣고 내달리는 동안 심장이 잠시 홀로 뛰는가 싶더니 다시 멈췄습니다. 그래도 달렸습니다. 몇 번은 정말 위험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기도처럼 속으로 뇌었습니다. 죽지 마요. 죽지 마요. 낡은 SUV가 클락션을 울리며 뒤를 바짝 쫓았습니다.

 당신은 의료진들에게 둘러싸여 빨려들 듯 병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는 늘 그렇지만 병원에 닿기 전에 살리지 못한 미안함이 먼저 치밀고 능력 없는 나에 대한 분노가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남일처럼 잊어버렸습니다.

 소방서로 돌아오니 라면은 팅팅 불어있었습니다. 함께 불어 터져서 흐느적거리는 나무젓가락으로 그걸 한 입에 먹어치웠습니다. 식어빠진 면발에서 타는 것 같은 맛이 났습니다.


 비번 이틀을 보내고 사무실에 출근한 날 아침, 책상 위에 당신 아들이 손수 적은 편지가 한 통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달고 폭신한 박스 과자도 함께였습니다. 편지엔 저희 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써 주셔서 감사하단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같은 사람이란 말이 왜 그렇게 우울하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이 영영 삶으로 돌아오지 못했어도 감사하는 당신 아들의 모습에 한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편지 없이 그냥 당신이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당신 아들을 실컷 욕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카메라로 찍어 고소라도 하려 했던 것 아니냐, 구급차 꽁무니를 미친 사람처럼 쫓아오는 바람에 얼마나 맘을 졸였는지 모른다, 덕분에 살아났으면 전화로라도 인사 한마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운운하며 당신이 살아나줘서 감사하단 말은 쏙 빼고 우리끼리 신나게 쑥덕거렸을 것입니다. 나는 정말 밤을 새워서라도 욕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내가 당신의 심장을 누를 때 내 심장도 함께 꾹꾹 눌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랬다면 조금 무심하게 당신 아들의 편지를 읽었을 것 같습니다. 박스 과자도 물 없이 술술 목구멍으로 넘겼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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