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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pr 02. 2023

교회에 간 강도

 남자의 전 부인이 신고를 했다. 요즘은 왜들 전 남편이고 부인이고 부모고가 신고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잊고 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10일 전에 연락이 끊어진 이후 전화기도 꺼져 있고 소식이 없었단다. 그러니까 애초에 연락을 안 하고 살면 될 일인데 연민인지 미련인지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꼭 한 발씩 걸쳐 놓다가 이모양이다. 연락이 끊어진 남자는 알콜중독이었는데, 병명처럼 붙이자면 말기였다. 알콜중독 말기. 그건 곧 시한부나 다름없었다.


 문이 잠겨 있어서 구조대가 동원되었다. 구조대는 많은 소방서 직원들이 일하기를 꿈꾸는 부서다. 불이 나면 최전방에서 인명을 구조하고, 수난사고가 나면 쫙 달라붙는 멋진 슈트를 입고 물에 뛰어든다. 튀르키예 같은 곳에 동원되어 대외적으로 대한민국 소방의 위상을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구급대의 업무 중 절반 이상이 비응급이고 주취자 상대라면 구조대도 평상시엔 지금 같은 일에 자주 동원된다. 열쇠가게 사장님이 된다. 개잡이가 된다. 시골에선 차로 들이받은 고라니며 너구리의 장례지도사가 된다. 열쇠가게 사장님으로 화한 구조대 직원이 전자도어록을 유심히 살피다가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는 건물 주인의 시선에 압도되어 창문을 뜯어내고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안 그래도 구조대 직원들은 체격이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창을 떼어낸 구멍으로 누르면 자꾸 밀려 나오는 솜뭉치처럼 큰 몸뚱이를 구겨 넣는 모양이 안타까웠다. 겨우 구멍을 통과한 그가 문을 열며 말했다.

 안에 계십니다.

 고생하셨어요, 들어가세요.

 네.

 구조대는 문만 따주고 횅 돌아섰다. 얄밉긴 하지만 함께 자리에 있는다고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혹시나 요구조자가 살아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출동한 지휘차도 함께 돌아갔다. 현장에는 구급차만 남았다. 소방학교에서 실습 나온 예비 소방관이 월요일부터 쭉 함께였는데, 이날이 금요일이니까 실습 마지막 날인 셈이었다. 이렇다 할 응급상황이 없어서 실습생에게 구급대도 괜찮아. 진압대나 구조대처럼 위험한 일도 많이 없고. 라고 거짓말하며 미래의 구급대원으로 진로의 가닥을 잡기를 강력하게 권하는 중이었다. 제세동기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냄새를 맡는 순간 맘 속으로 뇌었다. 조졌다. 절대 안 한다고 하겠네.

 

 부엌과 방이 붙은 원룸이었다. 바닥은 누운 소주병과 서있는 소주병과 재떨이로 쓰던 소주병이 미미하게 오와 열이 어긋나게 늘어져 있어 마치 녹색 물결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엎드린 채 유영하는 듯 시신 한 구가 있었는데, 심전도 패치를 붙이려고 다가가자 얼굴의 구멍마다 새카맣게 들러붙은 날파리가 와아악 하고 달려들었다. 아찔한 지린내와 닭똥 썩는 냄새와 햇볕에 녹은 감자 냄새와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눌어붙은 토사물 냄새가 뒤섞여 기도와 식도를 그러쥐고 멱살을 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N95 증조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냄새였다. 지옥에도 냄새가 난다면 바로 이런 냄새가 날 것이었다. 실습생은 마스크를 교체해야 할 것 같다고 밖으로 나갔다. 마스크 문제가 아니야. 말해주고 싶었지만 붙잡을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여기 함께 있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정리하는 동안 방에 시신과 단 둘이 남았다. 몸에 붙은 심전도 패치를 떼어내는데 썩은 피부가 들러붙어 함께 떨어졌다. 살만 했는가 묻고 싶었다. 아니면 내가 생각하듯 지옥 같았나 묻고 싶었다. 영원히 홀로 가라앉는 세 평 남짓한 지옥에서 평생 몸 안을 흐른 피만큼이나 많은 술을 마시게 만든 게 무엇이었나 물어보고 싶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교회에 가는 날이다. 교회가 악마적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교회가 욕을 먹는 건 교회 다니는 사람 탓이다. 여하튼 나는 또 맨 뒷자리에 앉아있을 것이다. 목사님의 확신에 찬 설교가 솜씨 좋은 웅변가의 연설처럼 잠시 숨을 고를 때마다, 맨 앞자리에 앉은 그 청년은 교회가 떠나가라 아멘을 외칠 것이다. 그 아멘은 참 듣기가 좋다. 힘이 넘친다. 듣고 있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그 청년의 삶은 그럴 것이다.

 엊그제 지옥에서 돌아온 나는 아멘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앉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 원짜리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바꿔달라고 해서 얻은 오천 원 짜리 두 장 가운데 하나를 칼처럼 숨기고 있다가 헌금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외칠 것이다. 아멘. 어서 내게 아멘을 내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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