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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pr 04. 2023

파리

 출근 시간은 8시 40분 까지다. 하지만 부러 이 삼십 분 빠르게 출근한다. 전일 근무자를 위한 배려인 셈인데, 빨리 교대해 줘야 어중간한 시간에 걸린 출동 때문에 전 근무자가 집에 못 가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도시구급대는 으레 그렇게 한다. 사실 이런 건 서장님이 나서서 격려 차원의 포상을 해줘야 하는 건 아니고 해 줬으면 좋겠다. 일찍 온다고 상 주는 경우는 없었지만 시계 못 보고 2분 일찍 퇴근한 직원이 숨어서 지켜보던 감찰부서 직원 눈에 걸리는 바람에 징계를 먹은 일은 있었다. 남들이 몰라서 그렇지 우리가 이렇게 치사한 조직, 아니 칼 같은 조직이다. 감찰부서 직원은 그 해에 승진했다.


 교대시간에 장비를 점검하는 중에 출동이 걸렸다. 오줌이 조금 마렵긴 했지만 참을만해서 그대로 구급차를 타고 나갔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사는 주택이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줄줄이 사탕 같은 약봉투가 이런저런 상자며 깡통에 그득그득했다. 밥보다 약을 많이 먹는 것 같았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할머님을 들것에 싣는 동안 컵라면 물을 부어서 들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거 저 사람 안 먹으면 먹을 사람이 없는데.

 저희 이제 갈게요. OO병원 모셔다 드리면 되지요?

 이거 먹고 가.

 안 돼요.

 먹고 가도 되지 않나?

 안 돼요.

 주춤주춤 지팡이를 짚고 아내가 실린 구급차를 배웅하는 할아버지의 왼손엔 여전히 불어 터진 컵라면이 들려 있었다. 한 입에 털어 넣을까 일 초 정도 고민하다가 그냥 구급차 문을 닫았다. 할머님은 어지럼증 외에 별다른 증상이 없어 병원에 쉬이 인계되었다. 구급활동 전용 단말기에 간호사 선생님의 인계 완료 사인을 받아 구급차에 오르는 순간 또 출동하라고 무전이 왔다. 오줌이 많이 마려웠다.


 90세가 넘은 할아버지였다. 그보다 아주 조금 젊은 할머님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머리를 봉숭아빛으로 물들이고 손톱도 봉숭아로 물들이고, 알록달록 월남치마를 입고 얼굴은 하얗게 분칠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는 귀가 완전히 먹어서 양방향 대화가 불가능했다. 거실에 붙은 부엌 개수대가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 물이 그득했다.

 할아버지, 물 잠글까요?

 뭐?

 물이요.

 불?

 물이요, 저기 수도꼭지요. 귀에다 손을 모아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자 그제야 알아들었다. 봉숭아빛 할머니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뭐가 재밌는지 연신 깔깔대고 웃었다. 할아버지가 혈압을 재는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귀먹은 사람 특유의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가스.

 가스 잠가드려요?

 어. 가스를 잠그고 할아버지를 간이형 들것에 실었다.

 어제는 잘 걸었는데. 할머님이 들것에 실려가는 할아버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연신 깔깔댔다. 할아버지를 모셔다 드린 곳은 집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신경외과 의원이었다. 원래 응급실 아니면 구급차로 이송이 불가능한 게 원칙이지만 암암리에 그냥 데려다준다. 안 된다고 했다가 입씨름하기 시작하면 그게 더 피곤하다. 그러다 소방서 민원게시판에 이름이라도 올라오면 누가 나를 보호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냥 간다. 할아버지는 허리가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귀도 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 고혈압 약을 타는 날이기도 했다. 이만하면 구급차 부를 만하지. 하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귀소 해서 차고에 구급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려는데 세 번째 출동벨이 울렸다. 사람이 쓰러졌다고 했다. 술을 먹은 것 같지는 않다는 내용이었다. 오줌 싸야 되는데.


 현장에 도착하니 뒤통수를 움켜쥐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겨우 환갑을 넘겼다. 요새는 환갑도 젊은 나이다. 거리에 나가서 걷고 뛰고 자전거페달을 밟고 하는 사람들 중엔 환갑 전후로 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남자는 젊은 나이가 무색하게 다 늙은 노인의 몸이었다. 해골처럼 말랐고 내장이 상했는지 피부는 검고 노리끼리했으며 무게 때문에 콧잔등까지 내려오는 두꺼운 안경을 썼다. 잘 걷지도 못했다. 뒤로 넘어졌는지 아스팔트에 벗겨진 뒤통수에 연신 빨간 피가 맺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같이 병원 가시죠. 지혈을 하며 말했다.

 안 가도 돼요.

 넘어지실 때 기억은 나세요? 방광과 요도가 엎치며 뒤치며 비명을 질렀다.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가시죠. 검사해 보는 게 정확해요.

 그럼 그럴까요. 가든 말든 싸든 해야지 이러다간 생리식염수 통이라도 열어서 오줌을 갈길 판이었다.

 네. 잘 생각하셨어요.

 그건 당신과 나 모두를 위해 잘한 결정이었다. 세 번이나 연거푸 환자를 데려다주는 바람에 간호사 선생님의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다리를 달달 떨며 서둘러 인계를 마친 후 뒤도 안 돌아보고 병원 화장실로 향했다. 남의 직장에 영역표시를 하는 느낌이라 병원에선 화장실에 잘 가지 않는데, 이날은 그런 거 없었다. 가릴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지퍼를 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깨끗한 병원 화장실 소변기를 마주했다. 여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요새 남자 화장실 소변기엔 오줌발이 명중하도록 적정 위치에 파리가 한 마리 그려져 있다. 살면서 파리가 그토록 반갑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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