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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pr 10. 2023

우주인의 죽음

 남자는 죽었다. 아니, 죽는 순간의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각한다는 게 맞는 표현인가. 어쩌면 뇌신경이 점멸하다 완전하게 태초의 불을 꺼뜨리는 순간 망막에 음각으로 새겨진 판화를 더듬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이치에 맞아 보인다.

 인간은 메마른 우주에 잘도 뿌리를 내렸다. 저마다의 우주선에 과거와 현재의 망령들의 이름을 스티커로 프린트해서 붙여 놓거나 아예 그라피티 해 버렸다. 일론 머스크, 패리스 힐튼, 정주영, 이건희, 체 게바라, 링컨, 오드리 헵번, 세종대왕, 애드 쉬런, 지저스 크라이스트, 붓다, 알라, 티라노 사우르스, 아이언 맨, 코로나-19, 등등. 등등.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우주정거장에 도킹하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우주선을 잃어버린 사람들만 제외하고. 남자도 그들 중 하나였다.

 언제 잃어버렸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놀기 좋아하는 남자의 부모가 그가 어렸을 때 개와 개밥만 남기고 남자를 원룸에 가둬둔 채 저들은 2박 3일 바다 여행을 다녀온 뒤 싸질러 놓은 똥을 두고 개와 남자를 함께 두들겨 팼던 그때부터였는지, 아니면 소개팅에 또 실패한 초등학교 때 노총각 선생이 마대 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그를 두들긴 뒤에 부러진 마대로 복도 왁스칠을 시켰던 때부터인지, 머리는 좋은데 관운이 따라주지 않아 5수째 공시공부를 시작한 때부터인지, 다 아니면 그냥 술을 퍼먹고 어디 전봇대에 오줌을 갈기다 우주선을 깜빡 두고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잃어버렸고, 찾을 길은 요원했다. 간혹 자기가 답을 알고 있다며 남자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열이면 열 사기꾼이었다. 손에 쥔 얼마 없는 동전까지 싸그리 털어갔다. 다 빼앗긴 남자는 마침내 우주복 하나만 남기고 완전한 맨몸이 되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원룸이었다. 덩치 큰 남자는 머리에 파란 비닐봉투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비닐봉투엔 새끼손가락 굵기의 투명한 관이 연결되었고, 연결부가 청테이프로 덕지덕지 했다. 관은 남자의 머리맡에 있는 질소가스통으로 이어졌다. 남자의 손발은 차게 굳었고 썩은 몸이 퉁퉁 부풀어 올랐다. 죽으면서도 발 시린 건 싫었는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머리에 쓴 비닐은 시신이 뱉어낸 가스가 들어차서 빵처럼 둥글었다. 그 모습이 마치 우주인이 헬멧을 쓴 것처럼 보였다. 헬멧 안쪽은 습기가 어려 잘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온 경찰에게 시신을 넘기고 나왔다. 테이크아웃 커피숍에서 샷을 두 번 추가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후후 불며 마시니 콧구멍에 들러붙은 냄새가 금세 떨어져 나갔다. 퇴근해서 밥도 잘 먹었다.





 100번째 발행하는 글입니다. 유쾌한 글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매일 쓰던 그런 게 나왔습니다. 불안한 저의 세계에서 늘 저보다도 먼저 보물을 발견해 주시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일인칭소방관시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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