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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pr 24. 2023

강물은 차갑다

 남자가 최고조의 해방감을 느끼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술 담배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한다. 개인적으로 내 딸들의 배우자가 될 남자들은 독서와 운동에서 해방감을 찾았으면 한다. 내 경우엔 다소 독특한데, 대중목욕탕을 방문했을 때 가장 큰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홀딱 벗고 있는 게 좋아서는 아니다. 두 번 강조하면 진짜처럼 들리기 때문에 한 번만 말하겠다.


 목욕탕이 좋은 이유는 냉탕이 있어서다. 처음 발을 담글 때 오줌이 마려운 느낌만 잘 견뎌내면 이후엔 수월하다. 욕조 턱에 두 팔을 교차시켜 얼굴을 삐딱하게 올려놓은 자세로 물안개로 희뿌얘진 바깥세상을 관망한다. 대개 노인이고 간혹 아빠와 함께 온 어린애들이 보인다. 임산부처럼 배를 내민 문신 아저씨들과는 눈을 마주쳐야 좋을 일이 없기 때문에 일부러 시선을 두지 않는다.

 냉탕에 오래 몸을 담그고 있다 보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처럼 허파에 차가운 공기가 들어차고, 심장이 펌프질 한 차가운 혈액에 머리가 얼어붙고, 뇌세포를 잇는 시냅스들마저 방한파카를 입고 움직이느라 동작이 굼떠지는 듯 생각이 느려진다. 바탕이 희고 테두리가 까만 거대한 목욕탕 시계 초침이 점차 속도를 잃는다. 초와 초 사이 공간이 무한에 수렴한다. 아주 살짝이지만, 나는 냉탕에서 추위에 의한 죽음을 맛본다. 그리고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온탕에 몸을 담근다. 전기가 흐르는 듯 짜릿짜릿한 느낌이 발끝에서 시작해서 온몸을 따라 퍼진다. 부활이다. 교회 다니는 누군가가 너를 죽음에서 건진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온탕이라고 답할 것이다.


 자정쯤이었다. 젊은 남자가 다리 위에서 물아래로 뛰어드는 걸 보고 누가 신고를 했다. 자살 명소로 이름난 그 다리는 높이가 다소 낮은데, 겨우 오백 미터 거리에 뛰어들면 즉사할 만한 높은 다리는 그닥 인기가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짐작이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죽으려는 순간에도 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난구조대가 앞서 달렸고 우리 구급차가 뒤따랐다. 비가 내리지 않은 지 며칠 되어서 물살은 잔잔했다. 보트를 띄운 구조대를 비롯하여 출동한 모든 인원이 나서서 강물 위로 랜턴을 비췄다. 십 여분의 수색 끝에 불빛에 무언가 걸렸다. 교각 아래쪽을 붙들고 있는 검푸른 형체였고, 한 손을 들어 흔들다 물에 빠질까 봐 교각을 붙들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구조대 보트가 요구조자를 건졌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환자를 받을 준비를 했다. 선착장에 도착하기 직전부터 환자가 무어라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넘겨받을 즈음엔 확실해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담요 두 장으로 번데기처럼 몸을 감싼 환자는 그렇게 병원 가는 길 내내 감사합니다를 뇌었다.


 남자가 살아난 건 운이 좋았을 뿐이다. 신고가 늦어졌다면 익사했던가 저체온으로 죽던가 둘 중 하나였다. 살아나서 감사합니다를 말할 정도였다면 삶에 얼마간 미련이 있었거나, 봄날에도 얼음장 같은 강에 빠져보니 죽은 미련도 무덤을 박차고 솟아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건 간에 남자는 살아나서 감사했다. 오늘도 강물 위로 몸을 던지는 수많은 사람들도 막상 살아나면 감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처럼 두 번씩 기회가 주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목욕탕에 가는 건 어떨까. 냉탕에 한 시간쯤 몸을 담그고 있다가 온탕으로 옮겨가면 죽음을 갈망하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지도 모르고, 의외로 그 집이 삶은 달걀과 식혜 맛집일지도 모를 일이다. 문신 아저씨는 그냥 무시하면 된다.


 강물은 차갑다. 죽음은 더 차갑다. 장담하는데, 거기엔 온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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