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Apr 23. 2023

사랑도 면죄부가 되나요

 잠긴 문을 열어달라는 신고였다. 집에는 얼마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가 홀로 있고, 자신은 집 문 밖에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었다. 전자도어락이었고, 어째선지 번호가 틀려서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럴듯하게 들리면서도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횡설수설하는 양이 술을 마신 것도 같았다.

 신고자분, 약주하셨어요?

 네. 어젯밤에 먹고 집에 들어가려니까 문이 잠겼어요.

 그럼 밤새 집 앞에서 기다리신 건가요.

 네. 빨리 와서 열어주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현장에는 구조대가 타고 온 차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구조대가 문을 열면 우리 구급대가 들어가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양상의 일반적인 시건개방 출동. 다섯 번에 한 번 꼴은 변사체를 보기 때문에 조금 긴장이 되었다. 비좁은 엘리베이터에 들것과 소생장비를 때려 넣고 올라가는 동안 계기판의 숫자가 꿈지럭거리며 늘어났다. 느린 심장박동 같아서 마음이 더 초조했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취기로 시뻘게진 얼굴로 문을 따라고 재촉하는 신고자와 난감해하는 구조대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두 명의 경찰이 있었다.


 경찰의 설명은 이랬다. 집 안에 있는 사람은 신고자의 전 부인이고, 경찰 측에 오래전에 신고자에 대한 접근금지신청을 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도 함께 사는 것처럼 말한 것도 거짓이고, 아내가 위급한 상황인 것처럼 꾸며댄 것도 거짓인 셈이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일이 있다는 것도 어쩌면 거짓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쓰러졌다면 내 눈앞에서 문 따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는 당신 덕이었음이 분명했다.

 119입니다. 안에 계시나요.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네. 있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답했다.

 아프신 데 없나요.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흰 들어가 볼게요.

 경찰과 신고자를 뒤로하고 구조대와 함께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닫힌 엘리베이터 문에 신고자의 욕지거리가 반사되어 내려가는 동안도 아파트 복도가 컹컹 울렸다.


 하루는 첫째가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말했다.

 아빠, 나 어렸을 때는 안 그랬는데 점점 많이 혼나는 것 같아요. 다 씹은 풍선껌을 파란 사인펜으로 색을 입혀서 찰흙처럼 가지고 놀다가 내게 혼난 날이었다. 사실 혼이라 봐야 앉혀 놓고 해도 될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정도인데 기겁하며 소리치는 엄마보다 앉아봐, 얘기 좀 하자 말하는 아빠가 더 무서운 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입 열기도 전에 벌써 눈물부터 뚝뚝 흘렸다. 거실 바닥 군데군데 지뢰처럼 눌러붙은 껌을 떼는 동안 거의 도를 닦는 심정이 되었다. 울고 싶은 건 나였다.

 아빠는 나를 사랑해서 혼내는 거죠.

 아니. 짤 없이 답하자마자 서러운지 엉엉 울었다.

 

 나는 사랑이 행동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말했다. 사랑해서 밥하고, 사랑해서 혼내고, 뭐든 사랑해서 그러하다 믿는 순간 사랑은 면죄부가 된다. 아이에게 내 감정을 다 드러내서 마음밭을 헤집어 놓는 것도 사랑이요 배우자에게 험한 말을 뱉고 손찌검을 하는 것도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 속 편하게 생각하게 된다. 문 따달라고 소리치던 그 남자도 아마 사랑을 이유로 흙발로 전 부인의 가슴을 짓밟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그 자체로서 표현이 된다면 좋다. 안아주는 것, 인내하는 것, 입 맞추는 것, 밥 하는 것, 책 읽어주는 것, 잠들 때까지 지켜보는 것. 그런 것들은 사랑이지만 성질부리고 상처 입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적어도 내겐 자식을 혼내는 일도 교육의 차원이지 사랑을 표현하는 행동은 아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혼날 때마다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내 마음을 말해 주기로 했다.


 네가 잘못을 했건 아니건 아빠가 널 사랑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무서워하지 마. 나는 늘 너를 사랑할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늙은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