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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09. 2023

소방관인데 과태료가 나왔어요

 우편물 함에 삐죽 튀어나온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늘 그렇지만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퇴근하는 기분을 당장에 잡치는 그 무엇, 세금 아니면 과태료, 운이 좋아서 보험사에서 보낸 약관 설명서 같은 게 도착했을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어디서 벌써 돈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발신인을 보니 시청 교통과 다섯 글자가 또렷하게 적혔다. 십중팔구 과태료 고지서다. 젠장, 요번엔 어디서 뭘 잘못한 걸까.


 주정차 위반이었고 단속 날짜를 보니 4월 말이었다. 가만있어보자, 월말이라면 설마. 머릿속에서 슬롯머신이 댕댕댕 돌아가더니 잭팟이 터졌다. 소화전 점검 중에 카메라 단속에 걸린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일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교통과에 이야기를 해서 과태료 물을 뻔한 걸 도로 물린 적이 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도 본부에서만 그러는가는 잘 모르겠는데 소방관들은 개개인 별로 할당된 소화전이 있다. 인당 10개 정도로 매월 소화전 렌치를 들고 가서 점검을 한다. 근무 중엔 여유가 없어서 점검을 못하고 보통 쉬는 날 와이프랑 애들 눈치 보며 시간을 빼서 한다. 그런다고 비번활동 수당을 챙겨주는 건 아니다. 근처에서 불이 났는데 소화전에서 물이 나오지 않으면 담당이 징계를 먹기 때문에 한다. 관리 및 설치는 본래 상하수도 사업소 담당인데 어느 날 그쪽에서 말도 없이 새로 만들거나 있던 소화전을 뽑아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불이 나고, 상황실에서 출동대에게 내 담당인 소화전의 위치를 안내했는데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소방관 하면서 의심과 불안만 늘어서 찝찝해서라도 달에 한 번은 나가서 점검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정차가 위험한 구간이 아니라면 보통 소화전옆에 잠시 정차를 하고 렌치로 스핀들을 돌려 물이 나오는가 본다. 요번에도 그러다가 단속 카메라에 찍혔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룰룰룰 콧노래를 부르며 교통과에 전화를 걸었다.


 교통과입니다.

 안녕하세요, 뭐 좀 문의드리려고요.

 네, 말씀하세요.

 다름 아니고 제가 소방관인데, 소화전 점검하다가 주정차 단속에 걸린 것 같아서요.

 아 소방관님이시구나. 염려 마세요. 필요한 양식 보내드릴 테니 작성해 주시면 취소 처리해 드릴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속에 걸린 날짜를 다시 확인하고, 지난달 근무한 날짜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내가 차를 두고 출근한 날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내가 일이 있어서 아주 오랜만에 차를 썼던 날이고, 소화전 점검한 날짜는 아니었던 것이다. 두 번 세 번 확인했지만 분명했다. 어쩌지. 큰 일은 아니었지만 당장 쪽팔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냥 계좌로 과태료만 부칠까도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소방관님이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주길 기다리고 있을 교통과 직원이 염려가 되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교통과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아까 그 소방관인데요.

 네, 작성 다 하셨나요?

 아뇨, 그게 아니라, 그, 죄송합니다.

 네?

 날짜를 잘못 봤어요.

 아, 네.

 지금 계좌로 돈 부치겠습니다.


 나랏밥 먹으면서 세금 내길 아까워한 덕으로 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만 2천 원이었나, 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대한민국에서 물리는 대로 세금 내면 바보 취급 당하는 분위기라 나도 잠시 그런 유혹에 빠졌나 보다. 3만 원이면 우리 네 식구 통닭 한 번 먹을 수 있는 돈이긴 한데, 내 욕심 때문에 공정과 상식이 무너져선 안 되는 일 아닌가. 거창한 이유를 마음에 새기며 교통과 계좌로 돈을 보냈다. 역시, 어디 가서 소방관인 거 말하고 다니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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