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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22. 2023

소방차 전용구역에 주차하면 과태료가 무려

 50만 원이고, 2회 위반 시부터는 100만 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주차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는데, 우선 불법주정차를 하는 사람들의 양심의 부재를 들 수 있겠고, 그들의 재력이 과태료 50 쯤이야 과자 사 먹을 정도로 여길 만큼 여유가 넘치는 경우도 생각해 봄직 하다. 500만 원이면 좀 사정이 나아질 것도 같은데, 그랬다간 쏟아지는 민원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나처럼 몸만 튼튼하지 유리멘탈들이 다수 모인 조직이 우리 소방이다. 분명 소방관의 용기는 불이 나거나 사람이 죽을 위기가 닥치는 경우 한정이다. 민원 전화 한 통에도 말대답 한 번 못하고 녜녜 벌벌 떤다.


 주의 깊게 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전용구역은 그야말로 소방활동을 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100세대 이상 아파트나 3층 이상 기숙사라면 건물 전면이나 후면에 가로 6m, 세로 12m 크기로 무조건 설치해야 하며, 건물 간 간격이 좁을 경우엔 그 중심에 하나라도 설치한다고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진압대원들이 수관을 끌고 들어가기에 가장 적절한 위치며, 특히 고층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다리차가 사다리를 전개하기 위해선 전용구역의 확보가 필수다. 나 같은 구급대원이 구급차를 타고 출동할 때도 전용구역이 비어있어야 환자를 싣고 내리기 용이하다. 그런데 어떤 날은 전용구역에 차를 세우고 다른 곳에서 환자를 보고 있으면 상황실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을 친다. 민원 전화가 왔단다. 구급차건 뭐건 빨리 차 빼라고. 전용 구역에 세워둔 구급차 때문에 나가질 못한다고. 아, 네, 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우리 아파트에도 전용구역이 몇 군데 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이해는 하지만 가만 보면 매일 세우는 차들만 거기에 세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공간을 찾아서 주차를 하는데 그 차들은 저녁 7시도 되기 전에 단지 내에 주차공간이 남아 있어도 꼭 거기에 차를 댄다. 게다가 우리 단지 앞 전용구역은 아파트 내 어린이집으로 통하는 입구에 있어서 아침마다 어린이집 차가 오가느라 아주 애를 먹는다. 솔직히 얄밉다. 소방관이라 소방차 전용구역에 세운 차를 두고 내 집에 어쩌다 들른 손님 같아서 그냥 두려고 했는데, 반복되니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과감히 전화기를 든다.

 관리실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O동 사는 주민인데요.

 네.

 O동이랑 O동 사이 소방차 전용구역에 주차한 차가 있어요.

 네.

 전용구역에 주차한 차가 있다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불법 주정차에 대한 계도 방송 비슷한 걸 한 번 틀어주고 끝이다. 당연히 아무 소용없다. 주민들끼리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괜히 귀찮은 일 만들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적극적으로 신고를 하는 사람이 없다. 하기야 직접 과태료를 먹여야 할 사람도 관리실에 전화를 하는 판이니. 끼적이는 와중에도 내 꼴이 우습다. 오래된 신문기사 한 줄이 떠오른다. ‘이러려고 소방관 됐나. 자괴감 들어.’ 소방관이 아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느 주말 아침에는 전용구역에 주차된 차 때문에 출근을 못할 뻔했다. 내 차 앞을 가로막은 불법주차 차량과 옆에 세운 차가 밖으로 나갈 공간을 틀어막다시피 하고 있었다. 차를 넣었다, 뺐다, 차에서 내렸다, 다시 탔다, 오두방정 탭댄스를 춘 뒤에야 아슬아슬하게 차를 뺄 수 있었다. 이날은 좀 화가 나서 생애 처음 국민신문고 앱을 다운 받아 직접 신고를 하기로 맘을 먹었다. 앱을 열었다.

 

 -소방차 전용구역 불법주차-


 공동주택 소방차전용구역에 주차한 차량,

 전용구역 진입로에 물건 등을 쌓는 행위


 안내문을 읽는 동안도 신이 났다. 넌 이제 죽었어.


 동일한 위치 및 방향에서

 안전신문고 앱으로 시차가 5분 이상인

 사진을 2장 이상 첨부하여(이하 중략)


 그러니까 5분 동안 여길 지키고 있으란 말이었다. 출근은 미루고 5분만 기다리면 고지가 코 앞인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전 근무팀 교대가 늦어질 수도 있고, 동네 사람 과태료 먹이느라 사람 돕는 일을 뒤로 미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포기했다.


 제도의 개선도 좋고, 적극적인 신고도 좋지만 소방차 전용구역을 비워두는 일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변화해야 상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음식점에서 고기와 담배를 함께 태우던 문화가 어느 날 갑자기 미개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처럼, 전용구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그렇게 변해야 한다. 조만간 그런 날이 오리라 믿는다. 아직 대한민국은 영리하고 양심적인 나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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