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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20. 2023

아내의 손맛이 변했다

 다르다는 말로는 모자란다. 아내와 나는 아예 다른 인종이다. 그녀의 눈은 크고 내 눈은 뱁새눈이며, 그녀의 모공에서 다섯 가닥씩 솟는 머리카락이 내 것에선 하나도 겨우 나온다. 내 얼굴은 크고 각졌지만 아내의 얼굴은 갓 계란판에 담긴 유정란처럼 매끈하다. 이건 비밀인데, 아내와는 달리 난 가슴도 크다. 체질 때문에 팔굽혀펴기만 해도 펑펑 커져서 한 십 년쯤 운동을 하니 어지간해선 밖에 나가서 꿀리지 않는 슴부심도 생겼다. 발목은 서로 비슷하려나. 그만큼 뭐 닮은 게 없다.


 아내는 함께 잠자리에 들 때면 내 어깨나 목 근처를 주무른다. 애정표현인지 그냥 만지고 싶은 건지, 여하튼 기분은 좋으니 가만히 있는다.

 아내의 손은 전자레인지에 5초쯤 돌린 마시멜로 같았다.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 열기를 뿜는 내 손 같지 않고, 부드럽고 말캉하며 딱 포근할 만큼의 온기를 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손맛이 변했다. 쥐는 손에 힘이 생겼고, 손바닥은 거칠어졌다. 잠들기 전 내 몸을 주무르는 그녀의 손길이 애정인지 애증인지 헷갈렸다. 악! 악! 두어 번 지르다가 팔목을 잡아 그녀의 손을 살폈다. 손가락이 길고 매끈하게 뻗은 모양은 그대론데 손바닥이 변했다. 엄지 아래 살이 오른 부분이 두툼해지고 손바닥에서 손가락이 뻗는 지점에 하나 같이 굳은살이 배겼다. 그 모양이 마치 내 손을 보는 것 같았다. 하나 비슷한 게 없었는데 그제야 닮은꼴이 생겼다.


 멸치 약골이었던 아내는 둘째가 태어난 뒤로 배 나온 멸치 약골이 되었다. 일하는 남편을 둔 육아하는 아내. 제 몸 관리할 여유가 없는 다른 많은 엄마들과 비슷한 수순을 밟아갔다. 몸도 몸인데 마음이 약해졌다. 피로와 우울이 짬뽕이 되어 아이들 잠든 저녁마다 군것질거릴 찾았고, 속이 부대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가라앉은 기분이 온 가족에게 전염되는 게 느껴졌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를 쫓아서 시작한 게 크로스핏이었다. 소방관들이 체력관리 하는 방법 중 거의 최고로 치는 고강도 운동이라, 솔직히 아내가 견디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매사 의욕 없고 귀찮아하던 아내가 운동할 땐 다른 사람이 되었다. 못다 푼 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열심이었다. 크로스핏은 시간대별로 모인 인원이 같은 운동메뉴를 동시에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체육관 천장이 무너져라 악을 쓰는 쪽을 쳐다보면 꼭 아내가 있었다. 거기엔 그녀를 좀먹던 우울도, 쑥스러움도, 무기력도 없었다. 운동을 마친 아내는 숱 많은 머리칼을 젖은 수건 마냥 바닥에 펼치며 그냥 누웠다. 땀으로 온몸이 다 젖어서 누웠다가 일어나면 검정색 체육관 바닥에 그녀의 몸 윤곽이 판화가 되어 찍혔다. 특히 엉덩이가 도드라졌다. 누가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 판화가 세상 어떤 예술작품보다 예쁘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튼튼한 엉덩이를 얻은 대신 쇠질을 하느라 손이 그 모양이 되었다. 언젠가 이 글을 보고 내 몸을 안 만지려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젠 힘이 넘치는 아내의 손이, 살아내려는 의지가 담긴 그 손이 좋다. 조금 거칠어진 건 오래도록 갈고닦은 나의 튼튼함이 있으니 괜찮다. 그리고 뭣보다 손이 암만 변해도, 아내의 손맛을 못 알아챌 내가 아니다. 불 꺼진 밤엔 더욱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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