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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14. 2023

집에 먹혀버린 남자

 나 군대 가기 전까지 우리 집은 사진관이었다. 부자 할아버지 덕에 동네에서 가장 크고 시설이 좋았다.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는데, 아버지의 '새것' 병으로 인해 자동차를 네 번인가 바꾸고 컴퓨터를 세 번인가 바꾸고 잊을만하면 사진관을 말끔하게 갈아엎는 데 다 썼다. 말하자면 여윳돈을 그런 식으로 썼단 의미다. 똑똑한 사람들처럼 남는 돈을 땅 사는 데 쓰지 않았다. 적어 놓긴 했지만 의미 없다. 내 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할아버지가 건물주여서 건물 1층 전면 절반을 사진관으로 쓰고, 뒤쪽 절반은 우리 가족 사는 집으로 썼다. 그중에 거실 한쪽에 붙은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암실이었다. 말하자면 사진관에서 촬영한 필름을 가져다가 인화하는 작업을 하는 방이었다. 작업할 때 자외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버지가 늘 주의를 주셨고, 엄마가 붉은 암실용 조명을 켜고 연필로 필름의 잡티를 수정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곤 했다. 암실에선 약품에 절은 덜 마른 사진들과 커터날로 깎아 낸 연필들 때문에 시큼하고 매캐한 냄새가 났다. 그 방은 엄마 일하는 걸 따라가서 보지 않는 한 들어갈 일이 없는 방이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색이 반전이 되어 눈이 허옇게 뒤집힌 것처럼 보이는 필름들과, 아직 깨어나지 않아서 희멀겋게 윤곽만 드러난 사진들은 어린 내게 지나치리만큼 음울한 인상을 주었다. 그랬는데,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사정이 바뀌었다. 식구들과 함께 자기엔 내 덩치가 너무 컸다. 필름 인화는 시내의 대형 사진관에 맡기기로 하고 암실을 방으로 개조해서 쓰기로 했다. 그래서 시큼한 어둠의 냄새가 나는 그 방은 그때부터 내 방이 되었다.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심리적인 현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한 손님들이 내 방으로 찾아왔다. 중절모를 쓴 아저씨는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내 곁을 멀뚱히 지키다 사라졌고, 어느 날 새벽엔 벌거벗은 여자가 내가 누운 이부자리 한 구석에서 몸을 뒤채고 있었다. 방에는 아주 작은 창문도 하나 있었는데, 딱 팔뚝께에서 잘린 시커먼 손 하나가 단골손님처럼 거길 통해서 드나들었다. 그래서 가위에 눌리는 밤이면 자존심이고 뭐고 겁이 나서 안방으로 건너가 부모님 곁에서 잠들었다. 중학생이 되어서까진 그럴 수가 없어서 손님이 찾아온 밤엔 벌떡 일어나 책을 보던 컴퓨터 게임을 하던 했다. 가위는 내가 대학생이 되고 타지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분명 암실에 뭐가 있긴 있었다.



 

 경찰 공동대응 요청 건이었다. 늦은 밤 경찰이 공원에 술에 취해 있던 남자를 발견했고, 그는 자신이 뇌 쪽에 이상이 있고 또 허리도 온전치가 않아 홀로 귀가할 수 없노라 밝혔다. 그냥 돌려보내기엔 찝찝하고 건강상태에 이상이 없다는 걸 근거로 남겨두려는 심산으로 우릴 부른 것 같았다. 이런 걸 귀찮아하면 안 된다. 몇 년 전에도 주취자를 경찰과 함께 집에 데려다주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반신불수가 된 경우도 있었다. 출동 나갔다면 성심성의껏 임하는 게 맞다.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우린 공무원 중에서도 한 14급쯤 되는 공무원이라는 마음으로 일해야 뒤탈이 없다. 우린 영웅 아니냐고? 팍, 씨, 진짜.


 벤치에 앉아 웅크리고 있던 남자는 구급대가 나타나자 반색을 했다. 일어나라(실제론 일어나 보세요 라고 했다). 어느 종교의 경전처럼 어깨에 손을 얹자 아주 멀쩡해져서 몸을 세웠다.

 저희가 모시고 갈게요. 갑자기 멀쩡해진 남자를 보고 어리둥절하는 경찰들에게 말했다. 사실 이런 경우는 흔하다. 민간인들에게 경찰권력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환자를 가운데 두고, 남자 대원 둘이 양 쪽에서 그의 손을 잡고 걸었다. 달이 환하게 비춰서 마치 친한 친구 셋이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잘 걷던 남자는 아파트 현관에서 갑자기 주저앉았다.

 힘들어요? 묻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 왔어요. 엘리베이터까지만 가면 금방이에요. 힘을 주어 손을 잡는데, 어쩐지 일어서고 싶지 않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설마. 남자가 사는 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띵동,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남자가 잡은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말했다.

 하지 마, 하지 마, 씨팔.

 왜 그러세요.

 하지 말라고, 경찰 불러? 경찰 부를까?

 선생님, 저희 도와드리러 온 거예요. 이러지 마세요.

 씨팔, 씨팔.

 어디 불편하신 데 있어요?

 씨팔, 미안해. 내가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씨팔.

 그러셨구나. 저희 선생님 모셔다 드리고 가봐야 돼요.

 알았어, 알았어.

 다른 분들도 구급차 쓰셔야 해요. 이해하시죠?

 응. 알았어.

 

 집 앞에 다다르자 남자는 또 맥없이 주저앉았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까마득한 어둠이 불길처럼 덮쳤다. 진이 다 빠진 남자의 겨드랑이를 양쪽에서 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명 스위치가 보이지 않아 부축한 자세 그대로 한참 벽을 더듬었다. 손에 무언가 걸렸다. 탁.


 처음엔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인가 싶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 있던 탓인지 조명이 너무 밝았고, 그 아래 드러난 풍경은 너무 붉었다. A4 용지에 그린 화투패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매화, 벚꽃, 모란, 싸리, 국화, 단풍, 홍단, 쌍피, 초단. 화투 그림마다 치매 노인의 것인 듯 삐뚤삐뚤한 손글씨로 이름 석 자가 적혔다. 벽 한쪽은 오래돼서 색이 누렇게 바랜 사진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전부 남자아이 둘과 어머니 세 식구의 모습만 담고 있었다. 다른 한쪽 벽엔 화투패 그림 위로 옛날 사람들이 태극기를 거는 높이 즈음 해서 남자의 어머니 사진이 어떤 우상처럼 걸려 있었다. 바닥엔 빨간색 좌식 의자 두 개가 놓였다. 남자는 슬그머니 우리가 부축한 손을 빼더니 그 옆에 따로 마련해 둔 식탁 의자에 앉았다.

 고마워. 남자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저흰 들어가 볼게요. 말했지만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초점 잃은 눈으로 바닥만 보았다. 집 안이 너무 환해서 남자가 곧 하얗게 지워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어릴 때처럼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 쿵. 문이 닫혔고, 뒤통수가 웅웅 울렸다. 가슴에서 쎄한 것이 치밀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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