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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21. 2023

터미널까지만 데려다주세요

 헬기가 떴다는 소리에 긴장부터 되었다. 보통은 초응급환자가 실려오기 때문이다. 나에겐 헬기에 실려온 환자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사발이오토바이, 일명 ATV라고 불리는 물건을 타다가 사고가 난 환자였다. 오프로드를 질주하다가 사발이가 뒤집혔고, 나무와 오토바이 사이에 가슴이 끼었다. 책에서만 보던 동요가슴(여러 개의 갈비뼈가 부러져서 숨을 쉴 때 부러진 부분이 쑥 들어가는 증상)이었다. 헬기에서 내린 환자를 받아 병원으로 옮기는 동안 혈압이 실시간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심장이 멈췄다. 병원으로서도 살릴 가능성이 낮은 환자의 가슴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응급실 교수로 일하는 친구 말에 의하면 수술했다가 죽으면 그게 곧 의사에 대한 고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요즘은 그런 수술은 꺼리는 추세라고 한다. 사명감도 좋지만 밥그릇이 위협받는다면 나라도 행동을 주저할 것 같다. 의사도 사람이다.


 군부대 내의 헬리포트를 이용해서 헬기가 착륙하면 거기서 환자를 인계받기로 했다. 제대하고 철조망을 두른 담벼락을 평생 넘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소방서 들어온 뒤론 뻔질나게 드나든다. 훈련 때문에, 건축물 자료조사 때문에, 헬기에 실려온 환자를 데려가려고. 

 부대 정문을 지키던 병사가 경례를 한 번 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이미 얘기가 전달이 된 모양이었다. 연병장에 임시로 마련된 헬리포트는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모래바닥이라 헬기가 서서히 착륙하는 동안 풍압 때문에 작은 자갈이 날려서 얼굴을 마구 때렸다. 모래바람을 헤치며 바퀴 달린 들것을 헬기 쪽으로 가져가 환자를 받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환자가 헬기에 동승한 구조대원의 팔을 붙들고 그냥 걸어 내렸다.

 산을 타던 환자는 어지럼증 때문에 내려가지 못하겠다고 신고를 했다. 주말을 맞아 다른 도시에서 넘어와 이쪽의 이름 있는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던 참이었다. 헬기가 곧장 이륙해서 정확한 경위는 들을 수 없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조난 가능성이 있어 헬기를 띄운 것 같았다.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헬기 한 번 띄우려면 연료비와 동승한 요원들(소방, 의사 등)의 인건비까지 단순계산으로도 300-500만 원 선이다. 헬기를 부를 만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곧 머릿속에서 지웠다. 환자가 무사하면 됐다. 별 일 아니라서 다행이다. 돈으로 계산할 일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저기요, 구급대원님.

 네.

 혹시 구급차로 병원만 가나요?

 네. 저희가 응급실 이송만 하는 게 원칙이라서요.

 아, 그럼 OO병원까지도 갈 수 있을까요?

 OO병원이면 OO시에 있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여기서 두 시간 거린데, 아예 타 시군으로 넘어가는 거잖아요.

 제가 몸이 좀 아파서 그런데, 안 되나요?

 여기까지 대화를 이어가니 아까 잊으려 했던 돈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환자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아프다고 말했지만 구급대원이 병원이송을 거절했다 라고 어디 가서 충분히 이야기할 사람이라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환자들과 감정싸움하기 싫어서 어지간한 요구는 들어주는 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응급도 아닌 환자를 원거리 병원으로 이송하는 동안 우리 관할의 다른 시민들은 구급차 이용을 못하게 되는 셈이니까. 민원 걸릴 각오를 하고 입을 떼었다.

 안 될 것 같습니다. 대신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는 모셔다 드릴 수 있어요.

 아, 다른 병원에는 안 가도 돼요.

 네?

 터미널까지는 데려다주실 수 있죠?


 헬리포트가 있는 군부대와 가깝기도 하고, 어차피 귀소 하는 길이라 터미널까지 갔다. 구급차 문만 살짝 열었다 닫으면 되는 일이었다. 나중 가서 딴소리할 가능성에 대비해서 이송 거부 확인서(환자가 병원 이송을 원치 않았음을 증명하는 서류)까지 작성하고, 서명도 받았다. 문제 될 일은 하나도 없었다.

 고맙습니다. 환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총총총 터미널 입구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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