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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n 07. 2023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야?

 커피 맛있다.

 그래?

 응, 새로 산 버터가 맛이 좋네.

 아내와 나는 버터를 넣은 커피로 아침식사를 한다. 벌써 수 년째 이어진 습관인데, 한 잔 마시고 나면 정신도 나고 몸도 따뜻해지고 좋다. 아이들은 볶음밥이나 간장 계란밥 같은 간편식으로 아침을 차려준다. 그래서 우리 네 식구 아침상 위엔 늘 밥그릇 둘, 커피잔 둘이 오른다.

 예전에 1팀에서 고양이 구조했다는 얘기 기억나?

 까만 줄무늬?

 응. 어제 새끼를 낳았어. 다섯이나.

 어머.

 그렇게 커피 한 잔 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데 둘째가 불쑥 물었다.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야?

 응?

 소방관 아니었어?

 응, 맞는데.

 근데 고양이를 왜 구해?

 구해줘야지. 아빠 아니면 누가 구해.

 그렇구나.

 아빠는 아픈 사람을 도와주니까, 버려진 고양이도 구해준다 하는 식으로 어찌어찌 납득이 된 모양이었다. 사실 소방관이 그런 일까지 해야 하냐고 불만인 직원들도 있다. 맞는 말이다. 소방관마다 다 생각이 같진 않다. 옳고 그른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난 고양이 구하러 나가는 게 싫진 않다.

 

 고양이들이 정말 위급해서 사람들이 신고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겁 없이 나무 위에 오른 어린놈이나, 수로에 빠져서 못 나오는 작은놈들은 당장 도움이 필요한 녀석들이다. 하지만 간혹 소방서에 신고가 들어온 게 맞나 의심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새끼 고양이들이 있어요.' 하는 식으로 지령이 내려온다. 출동하는 직원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이걸 신고하는 게 맞아? 하는 쪽과 그래서 뭘 어쩌란 거야 하는 쪽이다. 그래도 일단 출동벨이 울렸으니 나간다. 펌프차를 끌고 나가고, 펌프차가 출동 중이면 구급차가 나가기도 한다.


 신고를 한 사람들은 대개 현장에 있다. 저기요 저기. 안내하는 곳으로 가면 정말 위험에 처한 고양이들이나 너무 불쌍해 봬서 누가 나서서 돌보아줬으면 싶은 고양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출동한 소방관들이 고양이를 동물 포획용 우리에 집어넣으면 신고자들은 그제야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고맙습니다 소방관님.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제 갈 길 간다. 응?


 고양이를 소방서에 데려오면 그때부터가 진짜 문제다. 굶어서 상태가 안 좋은 녀석들은 편의점에서 고양이 전용 사료나 캔 같은 걸 사다가 먹이고, 비에 젖어서 떨고 있던 놈들은 굴러다니는 스티로폼 박스에 안 쓰는 모포 같은 걸 깔아서 보금자리를 만들어준다. 동물보호협회에 연락하는 방법도 있지만 오밤 중에 고양이를 구조한 경우 날이 밝을 때까지 연락은 어렵고, 설령 연락이 닿는다 해도 당장 협회 쪽에서 데려갈 여건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낳자마자 어미가 버리고 간 녀석들도 있었는데, 그날은 사무실에서 말뚝 서는 직원이 사료를 따뜻한 물에 불려서 주사기로 조금씩 먹이고 엉덩이를 두드려 똥도 누이고 뭐 그랬다.


 구조한 고양이 중 하나는 소방서 뒷마당 터줏대감이 되었다. 요번에 새끼 다섯을 낳은 녀석이다. 집에서 고양이 키우는 직원이 오며 가며 얘 밥도 챙겨줬더니 어느 날부터 눌러앉았다. 가라고 해도 딱 버티고 서서 골골골 밥 내놔라 한다. 뒷마당에서 담배 태우는 직원들을 다 자기 집사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녀석이 낳은 새끼 다섯 중 한 마리는 뒷다리 하나가 없었다. 몸도 약해서 제 형제들의 발길질에 밀려서 어미젖도 제대로 못 빨았는데 엊그제 출근했더니 보이지 않았다. 네 녀석만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어미 젖가슴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고, 어미는 세상 노곤한 얼굴로 천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첫째 딸을 18개월 동안 젖을 물렸던 와이프 얼굴이 딱 저 표정이었다.


 뒷마당에 누가 흙을 파서 작게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 그 위에 넓적한 돌을 하나 올린 모양이 제법  무언가가 거기 잠들었구나 하는 태가 났다. 다니는 회사 자랑을 꺼리는 나지만 이날은 좀 자랑스러웠다. 소방서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참 많다.


잘 가, 작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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