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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n 06. 2023

내 딸이 어때서

 경찰이 소방에 공동대응 요청을 할 때 출동지령은 유독 불친절해진다. 사고 대상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인지는 알 수 없어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길에 사람이 쓰러졌다 라거나 술을 먹고 싸웠다 같은 식이다. 어느 연령대의 사람이 얼마나 다쳤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큰 사고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실 문제될 건 없지만 구급차 타는 입장에서 불친절한 지령에 마음이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요번 건도 그랬다. 경찰 공동대응 요청입니다, 폭행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끝이었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그래서 뭐, 가서 싸우란 거야? 였다. 우리에겐 경찰처럼 사람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러니까 싸우는 건 말이 안 되고, 가서 사람들 중간에 껴서 몸빵이라도 해야 하는가 싶었다. 종종 그래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꽤 설득력이 있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바디캠을 켜고 녹화 준비를 했다. 이제는 내가 누구한테 맞았다고 증거라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조직이 많이 발전했다. 예전엔 구급차 타고 나가서 맞고 들어오면 위에선 맞고 들어온 놈 탓을 했다. 학생이 학폭을 당했는데, 선생님이 넌 뭘 어떻게 했길래 맞고 다니니 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현장엔 경찰들과 마흔 후반 정도로 뵈는 부부가 있었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주먹을 날렸고, 남편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아주머니는 자식이 고3이 되도록 툭하면 기집질이고, 밖에 나가서 들어올 생각을 않는다며 동네가 떠나가라 남편 욕을 했다. 아저씨는 배정남 배우가 어쩌다 내가 사는 동네에 놀러 온 것 같은 생김이었다. 잘 생겼다. 아주머니가 남편 욕을 하는 동안 미끈한 얼굴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차분했다. 구급대와 경찰은 너 보는 앞에서 즉사하겠다며 차도로 뛰어드는 아주머니 앞을 막아서느라 혼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그러는 동안도 아저씨는 덤덤한 얼굴이었다. 마치 아주머니의 열렬한 일인극을 홀로 차분하게 관람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뒤, 아주머니의 친정 엄마가 현장을 찾았다. 경찰 쪽에서 딸을 좀 진정시켜 주십사 하고 부른 거였다.

 그냥 약 먹고 죽어! 왜 살아! 주저앉아 울고 있는 딸을 발견하자마자 친정 엄마가 말했다. 나랑 같이 죽자. 살 사람은 편하게 살라 그러고, 자네는! 그래, 좋은 여자 잘 만나니까! 어이구야. 쓰러지려는 장모를 사위가 나서서 부축했다. 관절이 안 좋으셔서요. 누구한테 하는지도 모를 독백을 하고 아저씨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멀찍이서 다른 중년 부부 한 쌍이 손을 잡고 걸어왔다. 현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걸음이 차차 느려질 즈음 친정 엄마가 연극의 절정을 알리듯, 어떤 노래의 킬링 벌스(killing verse)처럼 외쳤다.


 내 딸이 어때서


 도로에 면한 아파트 단지에 그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고개를 드니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베란다에 팔을 기대고 서서 이쪽을 구경하고 있었다. 감정이입이 되어 심각한 얼굴로 보는 사람도 있고, 드라마만 못한 전개에 심드렁한 얼굴인 사람도 있었다. 조금 전 손을 잡고 천천히 지나던 부부는 흘긋흘긋 뒤돌아 보며 재미난다는 듯 웃었다. 나는 장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장모님은 자기 딸 사랑해 줘서 고맙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분인데, 사위에게 내 딸이 어때서 네가 그러냐 하는 말 같은 걸 않으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다시 운전석에 타고, 아주머니는 경찰 둘과 같은 차 뒷좌석에 앉음으로써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도움 안 되었던 친정 엄마는 경찰이 떨어뜨려 놓았다. 아마도 부부는 귀가해서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눌 터였다. 그건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껌처럼, 잘라내야 비로소 떨어져 나갈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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