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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n 04. 2023

자식의 온도차

 세상에, 누가 찜질팩을 대 놨어.


 비쩍 마른 노인은 말기암 환자였다. 열이 펄펄 끓는데 등허리에 찜질팩을 몇 개나 받쳐놓았다. 곁을 지키는 자식들이 제 엄마가 추워해서 그리 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고막 체온계 액정이 40도를 가리켰다.

 노인에게선 옅은 죽음의 냄새가 났다. 그마저도 비누향에 가려서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기저귀는 깨끗했고 어깨에 작은 욕창이 있었지만 잘 관리가 되고 있었다. 간이형 들것에 옮기는 동안도 각질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고열환자에게 찜질을 하는 몰상식이 갑자기 정성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노인의 옆엔 딸과 아들이 있었다. 아들 쪽이 보호자로 구급차에 동승했다.

 보호자분, 연락처랑 집주소 좀 알려주시겠어요.

 아 네, OO시 OO면 OO로 251입니다.

 OO시요?

 네네. 엄마, 괜찮아? 나야.

 짐작건대 아들은 못해도 4시간 거리를 차로 달려왔다. 워낙 병세가 위중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으나, 구급대가 도착해서 확인했을 때는 열이 나고 기력이 없을 뿐 절체절명의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염려가 되어 먼 거리를 달려왔으리라 생각했다.

 구급차를 오래 타다 보니 보호자가 정말 환자를 걱정하는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지표가 몇 개 생겼다. 그중 하나가 보호자가 응급실 간호사를 대하는 태도다. 대기하는 동안, 울 엄마는 응급이 아닌가, 엉? 하면서 간호사를 몰아세우는 사람들은 보통 환자는 안중에도 없는 이들이다. 간호사가 곧 환자를 살피는 사람인데 날을 세운다? 제 부모나 자식이 진심으로 염려된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반대로 묵묵히 대기하다가 간호사가 들것 쪽으로 다가오면 감사합니다 인사부터 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진짜다. 노인의 아들은 후자 쪽이었다.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 침대까지 옮겨가는 동안 한시도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같은 날 점심식사를 막 마쳤을 즈음 출동이 또 걸렸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다. 택시에서 내리다가 쓰러졌다는 신고였다. 현장에 도착하니 술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달은 노인이 허리를 도로 연석에 받치고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었다. 활력징후는 모두 정상범위였다. 그렇다고 해가 정수리에서 지글지글 끓는 날씨에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아버님, 신분증 있어요?

 어, 어. 이거.

 여기가 집주소 맞아요?

 어, 어.

 가까우니까 모셔다 드릴게. 병원은 안 가실 거예요?

 안 가.

 여기 지갑에 넣어 둔 번호, 이건 누구예요?

 딸.

 노인을 부축해서 구급차에 앉힌 뒤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만취한 노인이 귀가하면 넘어지거나 해서 다칠지도 모르니(실제로 이런 경우가 많다) 보호자가 와서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제가 좀 멀리 살아서요.

 어디신데요?

 XX동이요.

 아, 네. 차 타면 십오 분 거리였다. 그래도 당사자가 멀다고 느끼면 먼 거다.

 집에 가면 어머니도 계시고요. 맞다, 지금은 밭에 일 나가셨으려나? 아무튼, 저희 아버지, 그거 일상이에요. 대수롭지 않게 얘기를 해서 나도 마음을 놓고 싶은데, 타고난 오지라퍼라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정말 일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노인을 부축해서 나무로 만든 침상 위에 누였다. 그러자 그가 자리를 뜨려는 내 손을 부러져라 쥐었다.

 어우, 영감님이 웬 기운이.

 얼마야.

 예? 아, 돈 안 주셔도 돼요.

 얼마야.

 돈 받으면 안 돼요. 큰일 나요.

 노인은 아쉬운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손에 준 힘을 풀었다. 집을 나서려는 동안 자꾸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해서 다시 몇 번인가를 자리에 앉혔다. 서둘러 문을 닫고 나왔다. 뒤통수에 노인의 두 눈이 달라붙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구급차를 타고 집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혹시나 노인의 아내를 만나면 집에 좀 가보시라고 얘기할 심산이었다. 근처를 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냥 머무를 수가 없어서 느릿느릿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제야 뒤통수에 붙은 두 눈이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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