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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29. 2023

잘 되었다

 남자는 발이 퉁퉁 부어서 걷지 못했다. 나이는 갓 오십을 넘겼다. 자폐증인지 정신지체인지, 자폐증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정신지체로 이어진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알 수 없었다. 묻는 말에 전부 네네. 맞습니다. 네네. 하고 답했다. 떡진 머리에 밥풀 몇 개가 올라가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어머니가 동행했다.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아들보다도 훨씬 정정했다. 시간과 노동이 두텁게 만든 두 팔로 아들의 부은 다리를 매만졌다. 응급실의 환자분류 간호사에게 남자가 두 달 전부터 여기 병원에서 신장 투석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환자 분, 어디가 불편하세요.

 네네.

 다리 아파요?

 맞습니다. 네네.

 언제부터 아팠어요.

 네네.

 더 이상 질답이 의미 없다고 판단한 간호사가 남자의 생체징후를 측정하고 환자 식별용 네임밴드를 채웠다. 들것에서 병원 침대로 옮기는 동안 남자는 부은 발이 아픈지 말 못 하는 짐승처럼 낑낑댔다. 침대 곁에 마련된 의자에 환자의 어머니가 바닥으로 꺼지듯 앉았다. 들것을 치우며 환자에게 말했다.

 치료 잘 받고 가세요.

 맞습니다. 네네.




 큰 외삼촌이 있었다. 삼촌은 다운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 내 이름이 너무 발음하기 어려웠는지 나를 버슈슈 라고 불렀다.

 버슈슈가 삼촌의 첫 조카였기 때문에 애정이 각별했다. 다른 조카들은 세배하면 천 원이었는데, 버슈슈에겐 만 원짜리가 주어졌다. 가족들은 그 만 원짜리가 천만 원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어렸을 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젠 잘 안다.


 큰 외삼촌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는 당신 인생이 반타작이었노라 종종 말했다. 울 엄마와 막내 외삼촌은 그냥 보통 사람들 살듯이 살고, 큰 외삼촌은 장애인이고, 둘째 외삼촌은 모종의 이유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래서 반타작이라 자기 비하처럼 말했지만 외할머니는 장애가 있는 아들이라고 덜 사랑하고 그러는 분은 아니었다. 그 자식을 위해서라면 종교도 바꾸었다. 외할머니는 평생을 큰 외삼촌을 데리고 살다가 점점 힘에 부치자 시설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가장 믿음이 가는 재활원 한 곳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천주교인들만 받아줬다. 불교 신자였던 외할머니는 그 길로 천주교인이 되었다. 막내 외삼촌 말마따나 외할머니에게 종교는 필요할 때 골라 잡는 화투패나 다름없었다. 혹은 자식 그 자체가 종교였다.


 말년에 위암과 싸우던 외할머니는 스스로 세상을 등짐으로써 병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두 마디로 정리가 될 정도로 유언은 덤덤했다. 아파서 안 되겠다. 먼저 간다. 나는 유언장에 적힌 것 외에 외할머니가 아프다고 말하는 걸 들어본 일이 없다. 그래서 그 죽음이 이해가 되었다.


 큰 외삼촌은 불과 몇 해 만에 엄마 뒤를 따라갔다. 환갑을 넘겼으니 동일한 장애를 가진 사람 중에선 엄청나게 장수한 셈이었다. 엄마는 자식이 먼저 가는 걸 보지 않아도 되고, 자식은 엄마가 너무 멀리 가기 전에 따라갔으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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