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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n 01. 2023

사랑해요, 김여사

 김여사는 아마도 운전을 승용차로 배우지 않았다. 레이싱카와 대형 트레일러 운전을 섞어 놓은 듯한 모양새로 차를 몬다. 앞 차 엉덩이를 물고 가는 건 기본, 신호등의 노란불은 주의 신호가 아닌 빨간 불로 바뀌기 전에 서둘러 골인 지점에 들어가란 표시다.


 아, 내가 언제?


 급정거와 급출발은 아마도 그녀가 시집오기 전, 복잡한 도심에서 홀로 운전할 때 몸에 밴 습관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글 같은 출퇴근길을 여자의 몸으로 무사히 헤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차를 모는데 여자의 몸이 무슨 상관인가 묻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치자. 내 마누라적 허용이다. 여하튼 그녀의 운전은 거칠지만 교통법규는 철저하게 따르는 특징이 있다. 좌회전 신호 시 유턴하기, 급정거 시 비상 깜빡이 점등하기, 우회전 시 보행자 신호 앞 일단정지 등 나무랄 데 없다. 아 갑자기, 우리 차 앞을 다른 차가 깜빡이도 넣지 않고 칼치기로 막아선다.


 저런 개 XX XXXX.


 내가 잘못 들었나. 평소엔 온화한 그녀다. 절대 저런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놀란 눈으로 보면 그녀는 표정 없이 전방주시철저다. 역시 교통법규에 예민한 모범운전수다. 절대 그런 험한 말을 뱉었을 리 없다.


 그녀가 모는 차 조수석에 앉은 나는 가끔 훈수를 두다가 다투기도 한다. 아니, 다툰다기보단 혼나는 것에 가깝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뭔 소리야.

 아니, 아까 저 앞에서 좌회전해야 더 가깝지 않나.

 그럼 미리 말을 했어야지!

 미안해.


 뭐 이런 일이 있기도 하고 어느 때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는 바람에 정말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앞에 차, 차, 차!

 괜찮아!

 잠깐 멈췄다가 가면 되잖아, 꼭 그렇게 위험하게 해야 해?

 괜찮았다고, 안 위험했다고.

 그러다 사고 나는 거야!

 아오, 지겨워 진짜!

 내가 뭘 그렇게 지겹게 잔소리를 했나, 나는 또 샐쭉해져서 그때부터 말을 않는다. 이제 다시는 운전하는 거 두고 뭐라 얘기 안 할 거다. 매번 그렇게 다짐은 하는데, 위험하다 싶은 상황이 오면 자꾸 입이 근질거린다. 어쩔 수가 없다. 직업병이다.


 사고에는 경력이 의미 없다. 아흔아홉 번 무사해도 한 번 사고가 나면 끝이다. 삼십 년 무사고 경력을 자랑하다가 사고 한 번에 평생을 휠체어 신세를 질 수도 있다. 교차로에서 노란 불에 급하게 뛰어들다가 이제 막 출발하는 차와 부딪쳐 대형 사고가 나고, 안전벨트 안 매고 달리다가 유리창 밖으로 사람이 튀어나가고, 차선 변경 시에 서로 사각을 보지 못하고 달려드는 바람에 영문도 모르고 가드레일 밖으로 차가 튕겨져 날아간다. 조심을 해도 그렇다. 그리고 나는 일하면서 그런 식으로 불행해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그들도 운전하는 동안은 자신에게 불행이 닥치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그들의 눈을 보면(뜨고 있기나 한다면) 알 수 있다. 그건 이해할 수 없다는 눈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눈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예외는 없다.  


 나는 김여사를 사랑한다. 그녀가 행복하던 불행하던 나는 늘 그녀를 사랑하겠지만, 가급적이면 몸도 마음도 건강한 행복한 그녀를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나라에서 면허증 내놔라 할 때까지 그녀의 머리가 다 희도록 조수석에 앉아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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