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Jun 30. 2023

괴물

 고등학교 1학년 즈음 슬슬 조짐이 보였던 것 같다. 다른 애들처럼 책상에 붙어 있지 못해 교실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차라리 집에서 등하교를 했으면 통제가 됐을 텐데 기숙사 생활까지 했다. 저녁이면 한 그릇에 이천 원 하던 단골 순댓국집에서 소주 한 병과 국밥을 말아먹고 알딸딸해서 야자(당시에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주관하던 야간 자율학습 시간)를 했다. 허리가 다 굽은 할머님이 장사하던 곳이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열일곱여덟 먹은 사내놈이나 다 비슷비슷해 보였을 거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서 쉬이 술을 사 먹을 수 있었다.

 교실로 돌아가기 싫은 어떤 날은 저녁 먹고 혼자 학교 근처 노래방엘 갔다. 가끔 어울려주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주로 혼자였다. 서비스 주는 노래방 사장님 손가락이 먼저 지치나 악다구니를 쓰는 내 모가지가 먼저 지치나 의미 없는 경쟁을 벌이다 한 네댓 시간 즈음 뒤에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다. 간혹 학교로 찾아와 아들과 이야기 나누려는 엄마에게 괜히 트집을 잡아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학교엔 들어오지 않고 나랑 차 안에서 주로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리 차분히 조언을 해도 이 덩치 큰 고슴도치는 가시 돋친 정수리로 힘껏 엄마를 들이받고는 팽 돌아섰다. 엄마는 차 안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나는 낼모레면 마흔이지만 여전히 좀 이상하다. 남들 다 하는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별 관심 없고 지금도 홀로 여기에 꿈결 같은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사춘기는 지났어도 사돈의 팔춘기 즈음의 감정으로 매일을 산다. 사실 그게 가능한 건 본래 이렇게 생겨먹은 나를 인정해 주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이기 때문이다. 조금 속은 것 같긴 하지만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잘나 뵈는 아내, 아빠가 차려준 밥 덕에 있는 대로 입맛이 까다로워진 두 딸, 저 치는 어설퍼도 마음은 참 따뜻해라고 추켜세워주는 동료들과 친구들, 내가 진창을 구를 때나 (언젠가는) 고속도로 위를 달릴 때나 늘 나를 지지해 주는 부모님. 어쩌면 나는 변종이나 괴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 덕에 철딱서니 없는 몽상가 정도로 인생의 가닥을 잡았다.




 저 새끼 유치장에 좀 처넣어 주세요.

 아버지 좀 떨어뜨려 주세요.

 핸드폰 가져와. 어? 안 가져와?

 저한테 또 칼부림할지도 몰라요. 떨어뜨려 주세요.

 아버님, 자꾸 학생 자극하지 마세요.

 일단 유치장에 넣었다가, 강제 입원  못 시키나요? 예?

 저희가 그럴 권한은 없습니다.

 주머니에서 뭐가 나올지 몰라요. 8미터만 떨어뜨려 주세요.


 운전시험장에서 사무실 겸용 숙소로 쓰는 집이었다. 아버지와 스무 살 청년은 그곳에 살았다. 청년은 덩치도 좋고 아버지보다 키가 머리 하나만큼 컸지만 아버지를 죽도록 두려워했다. 아버지가 제 쪽으로 다가가려 할 때마다 부들부들 떨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삶의 궤적이 얼굴에 드러난다. 청년의 아버지는 호랑이 같았다. 눈은 섬뜩하게 빛나며 사냥감을 주시하는 듯했고, 범의 무늬처럼 굵고 검은 주름이 얼굴을 가득 채웠다. 낯빛은 녹슨 철판처럼 붉었는데 혀를 대면 쇠 맛이 날 것 같았다. 그에 반해 청년은 토끼 같았다. 알통만 굵은 토끼. 짧게 깎은 머리에 스크래치까지 넣어가며 강한 인상을 연출했지만 막 프라이팬에 깨뜨려진 달걀처럼 흔들리는 눈을 감출 수 없었다. 철저한 미스매치.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이었다. 청년은 아버지를 저에게서 떨어뜨려 달라며 애원했다.


 청년은 심한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평소에도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탔는데, 친구들과 단체 대화방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다툼이 생긴 뒤로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였다. 자신의 동영상을 유포한 녀석에게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며 못 알아들을 소리를 했다. 그래서 청년의 아버지가 강제로 휴대폰을 빼앗으려 하자 청년이 신고를 한 것이다.

 함께 출동한 경찰들은 아버지 쪽에 붙어서 행정 입원이나 동의 입원 절차 등에 대해 설명을 했고, 우리는 청년 쪽에 붙어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청년의 휴대폰을 빼앗은 뒤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싶어 했다. 그에 반해 아들은 다시는 그곳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일전에도 아버지의 강요로 잠시 정신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뒤로 폐쇄공포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청년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으며 지금은 따로 사는 어머니도 아버지 덕에 정신과 약을 먹는다고 말했다. 칼부림도 몇 차례 겪었다고 했다. 정신병원에서 병상에 묶인 채 맞은 진정제 탓에 왼쪽 다리가 지금도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데 또 이상한 건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 걷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를 저에게서 8미터, 꼭 8미터를 떨어뜨려 달라고 말했다. 그 정도가 마지노선인지 8이란 숫자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자니 어지러웠다. 이상한 나라의 소방관이 된 기분이었다.


 경찰이 당분간 청년의 아버지가 청년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당부하고, 이날 수시로 주변을 순찰하기로 하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되었다. 당장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대신 휴대전화는 아버지 손에 쥐어졌다.

  답 없는 의문만 머릿속에 남아서 귀소 하는 내내 찜찜한 기분이었다. 정신병자 아들을 유치장에 처넣어 달라는 아버지, 칼부림하는 아버지를 8미터 이상 떨어뜨려 달라는 아들. 누가 누구의 괴물일까. 누가 누구를 괴물로 만들었을까. 알 수 없었다.



 청년은 팔다리가 묶인 채 천장을 응시하고 있다. 병상을 둘러친 새하얀 벽엔 땟자국 하나 없다. 평범하지 않은 자신을, 자신의 의미를 설명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종종 새하얀 침묵에 익사할 것 같아 몸부림을 친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무표정한 간호사가 들어온다. 진정제를 주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