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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03. 2023

사람 줍는 토요일

 지난 토요일 밤 현장엔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입사 초기에 같은 팀이었던 형, 당시에 소방서에서 가장 끗발 있는 인사담당 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격 없고 겸손하셨던 주임님, 한참 구급차를 함께 탔던 친한 동생 등등. 구조대, 구급대, 대응단까지 함께한 출동이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도 서로 인사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가볍게 목례만 했다. 대원들은 자살예방 콜센터 상담원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말한 사람의 집 앞에 모여 있었다. 문은 잠겼고, 불은 켜져 있었다.


 방범창을 뜯어야 하나 아니면 도어록을 파괴해서 강제로 진입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원룸건물 꼭대기 층에 살던 건물주가 내려왔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전자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입주한 사람이 애초에 설정되어 있던 번호를 바꾸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이 열렸다. 침대엔 덩치 큰 남자의 몸이 엎어져 있었다. 온몸을 뒤덮은 요란한 뱀 문신이 남자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꿈틀거렸다. 굳이 몸을 뒤집어 생사를 확인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이런 출동을 나가면 열에 일곱은 몸을 뒤집어 불이 꺼진 동공과 눈을 맞추기 때문이었다. 건물을 나왔다.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에게 그제야 처음 안부를 물었다.


 구급차를 타고 센터로 귀소 하는데 갑자기 차가 멈췄다. 형, 저기 누구 누워 있는데요. 어? 어디? 정말이네, 눈도 밝다 너. 필로티 겸 주차장으로 쓰는 공간에 겨우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뵈는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학생, 일어나요, 일어나. 주먹으로 복장뼈를 세게 문지르자 악악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가 다시 배터리가 다 된 것처럼 눈을 감았고, 또 문지르면 악악 거리며 눈을 떴다가 오 초도 못 되어 다시 눈을 감았다. 그걸 한 다섯 번 하니 주먹을 대자마자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역시 인간은 학습을 해야 한다. 학생을 깨워서 어떻게든 집에 들여보내려는데 근처에서 경찰차가 한 대 다가왔다. 신고받고 오셨어요? 아뇨, 그냥 오다가 봤어요.


 학생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주소를 확인했다. 쓰러져 있던 곳 근처였다. 학생은 저를 부축하며 집 쪽으로 향하는 내가 못 미더운지, 아 죄송합니다, 이쪽 아니에요. 이쪽으로 가야 해요. 말을 했다. 술이 과해도 보통 제집은 찾아가기 때문에 처음엔 학생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러다 막다른 골목을 마주하고 어? 여기 맞는데를 뇌는 학생을 도로 붙들어 신분증에 적힌 주소로 향했다.

 이쪽으로 와요. OO로 OOO번지, 101호 맞죠? 말하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놀라서 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정말 무섭네요. 니가 더 무섭다 인마.


 학생은 제 집 건물 앞에서 도어록 번호 네 자리를 누른 뒤, 별표가 아닌 호출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해했다. 학생이 누르는 걸 얼핏 본 내가 비밀번호를 다시 누르고 별표를 눌렀다. 문이 열렸다. 학생은 이번엔 정말 놀란 눈으로 입을 벌리며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어서 들어가요, 들어가.


 시계는 벌써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는 중에 횡단보도 바로 앞에서 휴대폰을 보며 차도로 내려왔다, 인도로 올라갔다, 다시 차도로 내려왔다를 무한 반복하는 여학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예뻤고, 예쁘게 차려입었다. 맑은 날 볕이 반짝일 때 하늘거렸으면 더 예뻤을 텐데, 지금은 그저 위태로웠다.


 술을 많이 마셨나 봐요.

 그러게. 얼른 집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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