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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06. 2023

대상포진이지만 괜찮아

 이러고 가요? 나가라고요!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는 신고였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좁은 투룸에서 애인과 함께 사는 여자는 이날 술을 많이 마셨다.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는 집에서 입는 반바지와 얇은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상태였다. 정말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초응급이니 서둘러 구급차 타시라 말했더니 위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어쩌면 그게 목숨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지.


 밖에 나와서 기다리는 동안 집 안에선 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오 분여를 기다린 끝에 여자의 애인이 나와서 말했다.

 안 가겠데요.

 안 가신다고요? 가슴 아프시다 했잖아요.

 이제 괜찮데요. 죄송합니다.

 말을 맺은 남자는 이제 막 오열하기 시작한 여자가 있는 집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여자의 심장은 모르겠고 놀라서 대기실에서 뛰쳐나온 내 심장만 밤새 널뛰기를 했다.


 다음 날 아침, 가슴 아래쪽이 근질거려 거울을 보니 작은 뾰루지 같은 게 돋아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병원을 찾아갔다. 늙은 의사도 역시 대수롭지 않게 알레르기성 피부염이네요. 답하고는 연고와 소염제를 처방했다. 며칠이 지나자 뾰루지는 몸통 앞부터 등 쪽까지 띠 모양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동네에서 잘한다는 피부과를 찾아갔다. 대상포진입니다. 예?


 대상포진은 72시간 내에 약을 써야 초기에 잡을 수 있다는데, 처음 방문한 병원 의사와 내 몸 돌보길 우습게 여기던 나의 합작으로 시기를 놓쳤다. 급성기가 지나면 통증이 만성으로 진행됩니다. 그때는 옷깃만 스쳐도 아프실 거예요. 마스크를 써서 더 표정이 없어 보이는 여의사가 말했다. 좋아지는 경우도 있어요 라는 말 같은 걸 덧붙이리라 기대를 했지만 쐐기 박듯이 한 마디 했다. 이미 늦었어요. 쳇, 큰 병도 아닌 걸 두고 '이미' 늦었단다. 콧방귀를 뀌었지만 은근히 겁이 났다. 겁이 난 김에 면역력을 올려주는 영양제를 한 대 맞고 발진 부위의 통증을 줄여준다는 냉동 머시기 치료도 받았다. 99프로 상술이란 느낌이 들었지만 어차피 의료보험 실비에서 해결이 되는 수준이고, 그래, 위약(placebo) 효과란 것도 있지 않은가? 혹시 모른다. 덕분에 내 몸이 긍정 에너지를 뿜뿜 해서 만성으로 진행하려던 바이러스도 돌연 사의를 표하고 공중분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조금 식상한 표현이지만 아픈 건 무섭지 않다. 정말 무서운 건 왜 아픈지, 얼마나 아플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미 대상포진 확진을 받고 얼마간은 옷깃만 스쳐도 아플 것이란 통보를 받은 지금은 그래서 큰 염려가 없다. 혹 일하는 동안 통증 탓에 나도 모르게 썩은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함께 구급차 타는 동생에게만 미리 언질을 주었다.

 형 대상포진이래.

 예? 병가 써야 되는 거 아녜요?

 병가는 무슨.

 겁나 아프다는데.

 괜찮아. 까짓 거.

 아니, 진짜 겁나 아프데요.

 괜찮다고 인마.

 막 송곳으로 쿡쿡쿡쿡......

 그만 좀 해 줄래.


 벌써 아침 일곱 시 반이다. 어울리지도 않게 그만 징징대고 애들한테 아침식사로 약속한 계란찜이나 만들어야겠다. 그러다 보면 다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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