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고 가요? 나가라고요!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는 신고였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좁은 투룸에서 애인과 함께 사는 여자는 이날 술을 많이 마셨다.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는 집에서 입는 반바지와 얇은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상태였다. 정말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초응급이니 서둘러 구급차 타시라 말했더니 위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어쩌면 그게 목숨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지.
밖에 나와서 기다리는 동안 집 안에선 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오 분여를 기다린 끝에 여자의 애인이 나와서 말했다.
안 가겠데요.
안 가신다고요? 가슴 아프시다 했잖아요.
이제 괜찮데요. 죄송합니다.
말을 맺은 남자는 이제 막 오열하기 시작한 여자가 있는 집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여자의 심장은 모르겠고 놀라서 대기실에서 뛰쳐나온 내 심장만 밤새 널뛰기를 했다.
다음 날 아침, 가슴 아래쪽이 근질거려 거울을 보니 작은 뾰루지 같은 게 돋아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병원을 찾아갔다. 늙은 의사도 역시 대수롭지 않게 알레르기성 피부염이네요. 답하고는 연고와 소염제를 처방했다. 며칠이 지나자 뾰루지는 몸통 앞부터 등 쪽까지 띠 모양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동네에서 잘한다는 피부과를 찾아갔다. 대상포진입니다. 예?
대상포진은 72시간 내에 약을 써야 초기에 잡을 수 있다는데, 처음 방문한 병원 의사와 내 몸 돌보길 우습게 여기던 나의 합작으로 시기를 놓쳤다. 급성기가 지나면 통증이 만성으로 진행됩니다. 그때는 옷깃만 스쳐도 아프실 거예요. 마스크를 써서 더 표정이 없어 보이는 여의사가 말했다. 좋아지는 경우도 있어요 라는 말 같은 걸 덧붙이리라 기대를 했지만 쐐기 박듯이 한 마디 했다. 이미 늦었어요. 쳇, 큰 병도 아닌 걸 두고 '이미' 늦었단다. 콧방귀를 뀌었지만 은근히 겁이 났다. 겁이 난 김에 면역력을 올려주는 영양제를 한 대 맞고 발진 부위의 통증을 줄여준다는 냉동 머시기 치료도 받았다. 99프로 상술이란 느낌이 들었지만 어차피 의료보험 실비에서 해결이 되는 수준이고, 그래, 위약(placebo) 효과란 것도 있지 않은가? 혹시 모른다. 덕분에 내 몸이 긍정 에너지를 뿜뿜 해서 만성으로 진행하려던 바이러스도 돌연 사의를 표하고 공중분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조금 식상한 표현이지만 아픈 건 무섭지 않다. 정말 무서운 건 왜 아픈지, 얼마나 아플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미 대상포진 확진을 받고 얼마간은 옷깃만 스쳐도 아플 것이란 통보를 받은 지금은 그래서 큰 염려가 없다. 혹 일하는 동안 통증 탓에 나도 모르게 썩은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함께 구급차 타는 동생에게만 미리 언질을 주었다.
형 대상포진이래.
예? 병가 써야 되는 거 아녜요?
병가는 무슨.
겁나 아프다는데.
괜찮아. 까짓 거.
아니, 진짜 겁나 아프데요.
괜찮다고 인마.
막 송곳으로 쿡쿡쿡쿡......
그만 좀 해 줄래.
벌써 아침 일곱 시 반이다. 어울리지도 않게 그만 징징대고 애들한테 아침식사로 약속한 계란찜이나 만들어야겠다. 그러다 보면 다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