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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08. 2023

비틀즈와 볶음 국수

 내가 이십 대 초반이었을 때 우리 집은 국수가게였다. 닭발을 푹 고아 만든 특제 양념장으로 볶음 국수를 만들어 팔았다. 일 인분에 3천 원이었다. 까만 맛과 빨간 맛 국수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대학생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평생 비틀즈의 팬이었던 엄마는 영국 런던의 관광명소 명칭을 따서 가게 이름을 소호(SOHO)라고 지었다. 나는 그 이름이 싫었다. 거기엔 시집오기 전 라이브 카페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던 엄마의 해진 꿈이 담긴 것 같았다.

  

 나는 국수 가게 근처 삼겹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담배 태우러 종종 밖에 나왔지만 엄마 일하는 데 부러 찾아가지 않았다. 거머리 같은 아들을 살찌우려고 밤늦도록 국수만 볶는 엄마가 미련해 보였다. 손에서 음식 냄새가 빠지질 않네. 말할 때마다 그 손에는 꿈도 노래도 사라지고 세월만 남은 것 같아 속이 쓰렸다. 엄마가 아니라 말해도 그건 내 탓이었다. 엄마 빼면, 세상 누가 봐도 그건 내 탓이었다.




 식당으로 출동을 나갔다. 칼국수 가게였다. 가게에서 직접 제면을 한다고 이 근방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아주머니는 국수 뽑는 기계에 반죽을 집어넣다가 오른손이 빨려 들어갔다. 함께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기계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맞물려 있던 연결부가 벌어지며 유격이 생기자, 국수 나오는 수십 개의 고랑에 새빨간 피가 고이며 아래로 방울져 떨어졌다. 이윽고 완전히 분해된 기계에서 손이 빠져나왔다. 손목 바로 아래까지 칼국수 모양으로 짓눌려 있었다. 동맥이 다치진 않아 출혈은 많지 않았지만 온전히 예전처럼 손을 쓸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내내 아주머니는 말이 없었다. 처음 기계에서 손을 꺼내어 지혈할 때를 제외하곤 신음 소리도 내지 않았다. 붕대가 감긴 오른손만 멀뚱히 쳐다봤다. 문득 그 손에도 어떤 꿈이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도 모르고 남편도 모르는 꿈. 주름 하나 없이 매끈했던.


 그녀는 소호(SOHO)의 밤거리에서 국수를 볶고 있다. 야외에 놓은 싸구려 포마이카 식탁 네 개에 빨강, 초록, 파랑, 노랑 땡땡이 무늬가 프린트되어 달빛을 받아 빛난다. 장발을 멋스럽게 기른 영국 청년 넷이 맞은편 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온다.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닭발 소스 볶음 국수를 처음 맛본 그들은 당장 셰프의 정체를 궁금해한다. 그녀가 주방에서 나온다. 청년들은 국수맛을 극찬하며 이번 투어에 함께 하면서 볶음 국수를 만들어 달라고 사정한다. 원한다면 함께 무대에 서도 좋다고 말한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묻는다.


 가게는 어쩔까요. 그러자, 청년들 중 테가 둥글고 큰 안경을 쓴 남자가 대답한다.


 Let it be(내버려 둬).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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