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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10. 2023

누가 달달한 게 몸에 안 좋다 그래?

 남자는 화가 나 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알 수 없다. 곧 목숨을 잃을 것 같은 절박감이 전신을 감싼다. 식은땀으로 번들거리는 남자의 몸을 굵은 덩굴 같은 그림자들이 단단하게 죄어온다. 목 아래로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죽는 건가. 남자는 최후의 수단을 꺼낸다.

 아저씨! 물지 마요, 아저씨!

 일단 꿀물부터 먹여 봐.

 숟가락 씹지 마요, 이빨 부러지겠네!

 아! 아! 꼬집지 마세요, 악! 아악!

 그림자가 한 수저씩 남자의 입에 물을 흘려 넣는다. 한 방울씩 숨통을 죄는 지독한 물고문이다. 남자는 고개를 흔들며 저항한다. 또 한 방울, 물이 입술을 적신다. 그리고 다시 또 한 방울. 어쩐지 혀 끝에 단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부옇던 시야가 차츰 밝아진다. 고문이 지속될수록 의식은 또렷해지고 흥분은 가라앉는다. 그림자 중 하나가 철썩철썩 팔뚝을 내려치더니 굵은 주사 바늘을 찔러 넣는다. 겨우 이 분이나 지났을까. 남자의 눈앞에 주황색 옷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벼락처럼 나타난다.

 정신이 좀 드세요?

 누구......

 119입니다.

 여긴 저희 집인데.

 네. 저혈당으로 쓰러지셨어요. 정신은 차렸으나 혹시 모르기 때문에 서둘러 병원 이송을 권했다.

 옷 좀 입고 가면 안 되나요.

 어차피 가면 환자복 입으실 거예요. 빨리 가시죠.

 오줌 좀 누고요.

 얼른 하세요.

 아니 뭔 정신 나간 사람 대하듯 하나. 천천히 좀 하지.

 제가 사실 아저씨한테 물릴 뻔했어요. 말하고 싶은 걸 애써 눌러 참았다. 어차피 말해도 믿지 못할 터였다. 십팔 놈아. 십구 놈아. 천지 사방에 팔다리를 내지르며 이가 부서져라 꿀물이 고인 나무 수저를 씹어먹던 남자를 그 자신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소변을 본 뒤 낑낑 대며 땀으로 젖은 팬티를 끌어올리는 남자의 등을 그의 아내가 사정없이 후려쳤다. 빨리 가요. 빨리.

 



  점심 빵 먹을까.


  이런 말이 아내의 입에서 나오면 거의 신호라고 봐야 한다. 근 10년 가까이 나름 무탈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 신호에 예민하게 대응한 덕이 크다. 남자인 나는 평생 가도 이해 못 할, 그저 당신과 나 사이의 공기가 슬며시 얼어붙는 것 만으로 가늠할 수 있는 시간. 마법이라 이름하나 함께하는 입장에선 (죽 끓는) 변덕이라 부르고 싶은 그것. 하지만 여전한 아내의 젊음을 증명하기에 더없이 감사한 현상.


 그날이면 당신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다정한 눈빛도 먼저 내미는 손도 없다. 굵은 사포처럼 거칠어진다. 마음이 따뜻한 당신은 말을 하면 할수록 내게 실수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날이면 부러 입을 열지 않는다. 달마다 찾아오는 침묵은 매번 어색하지만 오래 당신을 알아서 이젠 그 침묵이 두렵지 않다.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빵집 문을 연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시키고 당신이 좋아하는 빵을 고른다. 달콤하고 쫀득한 앙버터, 폭신한 팡도르, 생크림을 올린 식빵도 집는다. 우리는 헨젤과 그레텔이 되어서 멀찍이 떨어진 마음 사이사이에 놓인 빵조각을 되짚어가며 걷는다. 그 끝엔 변하지 않는 서로가 기다리고 있다. 늘 그래 왔다.


  달달한 음식에는 사람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힘이 있다. 저혈당으로 악몽을 헤매는 환자도, 마법으로 마음의 벽을 쌓아 올린 아내도,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달달함을 이길 순 없다. 달달한 게 몸에 안 좋다고? 어쩌면 그건 그 사람이 제대로 단맛을 본 일이 없어서 그리 말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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