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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18. 2023

너 그러다 코끼리 된다

 소방관 하기 전엔 체육관에서 일했다. 주로 여성 회원 담당으로 다이어트 PT를 했다. 얼굴이 잘생겨서 여성 회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는 희망사항이고 아무래도 지금처럼 주저리주저리 잘 떠들었던 게 먹혔던 것 같다. 일하면서 다이어트를 성공시킨 사례를 꼽으면 수 십 명은 될 것이다. 정말 잘 나가는 트레이너들에 비하면 그저 그런 수준이지만 내 나름은 자신이 있었다. 살은 못 빼는 게 아니라 안 빼는 거란 믿음이 확고했다.


 한창 자기 몸에 관심이 많을 나이의 여성 위주로 PT를 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살을 뺄 수 있었다. 그 나이대 사람들은 밀가루 끊고, 밥 줄이고 하루 삼십 분만 걸어도 살이 빠진다. 그걸 못 하는 사람만 실패를 했다. 신체기능이 최고조를 달리고 있는 시점에 시작하는 다이어트는 운동하고 식조절하는 그날그날의 성과가 눈에 보일 만큼 쉽다. 젊은 사람들이 나는 맘만 먹으면 살 뺄 수 있어. 하는 건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고, 그렇게 방심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나이를 먹으면 다이어트는 고된 작업이 된다. 자동차가 연식이 오래되면 연비가 떨어지는 것처럼 몸이 좀처럼 지방을 연소시키지 못한다. 더 나아가서 어디가 망가진 몸을 붙들고 살을 빼기란 정말 쉽지 않다. 다이어트 자체가 무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날씬한 몸만들기는 고사하고 노란불이 들어온 건강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지 않도록 조심조심 살아야 한다.


 엊그제 새벽에 구급차에 태운 환자는 코끼리 같았다. 낯빛은 거무죽죽하고 눈두덩이 움푹 들어갔다. 게다가 얼굴과 몸통은 말랐는데 팔다리만 뽀빠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보통 신장이 망가지면 소변이 줄고 몸이 붓기 때문에 신부전을 의심했다. 하지만 환자의 과거력을 묻는 과정에서 그녀가 당뇨, 고혈압, 신부전에  더해 심장도 온전치 않아 페이스 메이커를 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그녀의 팔다리를 코끼리처럼 붓게 만든 원인이 무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위에 적은 것들 전부가 원인일 수도 있었다.


 환자는 부은 발로 집 앞 골목을 거닐다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 신고를 했다. 발바닥의 아치가 없어지다 못해 아예 볼록렌즈처럼 아래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런 발로 뒤뚱뒤뚱 중심을 잡기도 어려웠을뿐더러 발을 디딜 때마다 찌르는 듯한 고통을 참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은 걸음을 떼는 것조차 큰 일이었다. 환자가 말하길, 병원에서 처방받은 이뇨제를 먹어도 부어오른 팔다리는 수년째 그대로였다. 이미 코끼리가 된 그녀를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건강관리하는 방법이야 발에 차일 만큼 많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만 봐도 제 몸 챙기는 걸 당면과제로 생각하지 않고 나중에, 때가 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문 기사 쓴다는 핑계로 잠시 잠깐 산책 나가는 것도 귀찮아하는 엄마, 머나먼 남쪽 땅에 홀로 취직해서 하루 한 끼 이상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여동생, 올해로 20년째 흡연 경력을 맞는 그림쟁이 사촌 형, 몸만 믿고 맘껏 먹고 마시다 통풍이 와서 술 한잔도 잘 못 하게 된 나.

 

 그래서 말 나온 김에 제대로 몸을 살펴야 한다. 적당히 먹고, 마시고, 때때로 움직여야 한다. 아직 튼튼한 두 다리로 지면을 디딜 수 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당신도 얼마든지 코끼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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