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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30. 2023

그때가 좋았는데

 이십 대 때는 아르바이트로 연명했다. 특별한 재주가 없어서 몸으로만 때웠다. 국밥집, 통닭집, 고깃집, 호프집. 술 취한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일만 골라서 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게 깨끗한 일자리보다 돈이 더 됐다.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남자화장실 소변기에 오바이트해 놓는 놈, 다 먹지도 않은 밥그릇에 담배꽁초 꽂아 놓는 놈, 나이 어리다고 반말로 주문하고 계산할 땐 동생 좀 깎아 줘 하는 놈, 다 먹은 술병 치워주겠다는데 굳이 테이블 위에 쌓아 놓다가 깨먹는 놈. 놈이라고 하면 양심에 찔리는 사람들은 욱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놈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 난 아르바이트 관두고 회사 같은 데 들어가면 다신 술 취한 인간들을 상대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소방서에 자리를 잡았다. 그땐 119에 신고하면 소방관들이 주취자들을 치워줬는데 이젠 내가 소방관이다. 치킨 게임의 맨 마지막 순서. 폭탄 돌리기의 끝.


 사람이 쓰러졌다는 신고였다. 맑은 날 사람이 쓰러졌다는 신고는 안 봐도 그 내용이 빤했으나 일단 출동해서 확인은 해야 했다. 이젠 지구 온난화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날씨가 덥다 못해 펄펄 끓어서 더위를 못 이긴 사람이 쓰러져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사방이 에어컨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낮에 쓰러진 이가 주취자일 확률이 95% 이상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소방관이니까. 지나가던 행인 1이 아니니까 군말 없이 나갔다. 나도 그냥 월급쟁이고 내 할 일 하는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남자는 인도 가장자리 잡초 더미에 머리만 밀어 넣고 잠들어 있었다. 머리 아래로는 인도를 가로막은 채였다. 색이 다 빠진 체크무늬 여름 남방에 해진 청바지, 아래로는 짧은 고무장화를 신고 곁엔 흙이 잔뜩 묻은 작은 배낭이 놓여 있었다. 어디 텃밭에서 일한 뒤에 한 잔 걸치고 오는 모양새였다. 날이 더워서 깊게 잠들지는 못했는지 건드리니까 금방 잠을 깼다.

 어, 뭐, 왜.

 아버님, 일어나세요.

 아버님? 내가 왜 아버님이야.

 지나가시던 분이 신고했어요. 일어나세요.

 아이 씨, 가, 기냥, 가.

 댁에 모셔다 드릴게요.

 그래?

 네.

 내가 OO중학교 나오고, OO고등학교 46회야.

 저랑 동문이시네요. 얼른 타세요.

 그래? 이야, 반갑다!

 타세요, 선배님.


 이건 주취자들을 한참 상대하면서 터득한 요령인데, 대부분의 주취자들은 인정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적당히 추켜세우며 구슬리면 다루기가 쉽다. 그게 진실이건 거짓이건 중요치 않다. 어차피 다음날이 되면 다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선배님이라 부른 남자는 신이 나서 집에 가는 내내 떠들어댔다. 나는 워낙 남의 얘기 듣는 걸 좋아해서 그게 또 싫진 않았다.

 내가 OO교육대학교 나왔어.

 선생님이셨구나.

 그래. 33년 동안 교직에 있었지. 요번에 여교사 하나 자살했지? 그땐 그런 거 없었어.

 그런가요.

 그럼! 우리 땐 학부모 귓방맹이도 날리고 그랬어. 교사의 권위가 있었지.

 아아.

 그때가 좋았는데.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다닐 때 나도 참 많이 맞았다. 몇 번인가는 잘못을 해서 맞고, 선생님이 기분이 안 좋으면 맞고, 선생님이 때리고 싶을 때 맞았다. 스승의 날 전날, 빈 편지봉투를 하나씩 아이들에게 나눠주던 선생님이 계셨고, 교사 휴게실에서 5학년 여학생을 옆자리에 앉히고 허벅지를 주무르며 상담을 하던 선생님도 계셨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학부모들은 비슷한 경험을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자기가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옆에서 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땐 그런 시대였다.

 야만의 시대를 겪은 어린이들이 나이를 먹어 학부모가 되었을 때, 하나 편견 없이 내 아이를 학교에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생님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하게 남은 사람일수록, 나아가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인 학부모가 되는 건 아닐까.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나는 요즘 세대의 선생님들이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실감한다. 그들 또한 야만의 시대를 지났지만, 그 유산을 이어가지 않고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참 교육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몇 마디 이야기만 나눠보면 알 수 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거의 내 새끼 대하듯 돌본다. 늦어도 다그치지 않고,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성공을 위한 과정이라고 독려한다. 남들만큼 못한다고 귓방맹이 때리던 선생들과는 다르다.


 가장 중요한 건 학교 안과 학교 바깥의 사람들이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했고, 사람이 변했다. 그저 어느 편에 힘을 실어주는 식으로는 매번 똑같은 비극이 반복될 뿐이다. 그때가 좋았는데. 헛소리들 하지 말고 변화한 오늘을 보면 좋겠다. 거기엔 분명, 과거보다 더 내 아이에게 진심인 서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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