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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27. 2023

우는 여자들

 며칠 만에 비가 멎었다. 날은 맑은데 종일 우는 여자들만 구급차에 실었다. 쨍한 날씨와 여자 사이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인과관계가 숨어있을까 잠시 고민을 했다.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내가 남자여서 평생 알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건 남자가 여자에게 친절해야 하는 이유였다. 잘 모르니까, 남자는 늘 낯선 손님처럼 여자를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일하다 과호흡으로 신고된 아주머니였다. 병원으로 실려가는 내내 꺽꺽 가슴이 터져라 숨을 들이켰다. 대학병원에선 과호흡도 호흡기 증상에 해당하기 때문에 격리구역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두 시간 대기였다. 아주머니는 빠르게 몰아쉬던 숨이 제 박자를 찾기 무섭게 울기 시작했다. 병실에 함께 들어갈 보호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주머니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119 구급대입니다.

 네.

 아내분이 회사서 일하시다가 과호흡으로 신고가 되셨어요.

 아아. 네.

 평소 앓고 계신 질환이 있나요.

 글쎄요. 우울증 약 먹는 거 말곤 없어요.

 보호자 한 분 오셔야 하는데.

 가야 돼요?

 못 오세요?

 아니 그건 아닌데.

 남편은 무어라 무어라 주워섬기다 결국 한참만에 병원으로 오겠다고 답했다.


 느낌이 쎄해서 점심으로 싸 온 삶은 계란 네 개를 십 분 만에 해치웠다. 다 먹기 무섭게 출동벨이 울렸다. 경찰 공동대응 건이었다. 남편이 때렸다. 너무 자주 보는 지령이어서 복사 붙여 넣기라도 한 게 아닐까 잠깐 의심했다.

 시내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아파트 중 한 곳이었다. 엘리베이터가 30층도 넘게 올라갔다. 한 층을 독채로 쓰는 집 앞엔 반짝거리는 새 유모차 세 대가 놓였다. 집 안엔 경찰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네댓 살 정도로 뵈는 아이가 우릴 보며 안녕! 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다행히 엄마가 두들겨 맞는 동안 제 방에 들어가 있기라도 한 모양으로 표정이 밝았다. 젊은 여자는 키가 크고 늘씬했다. 화장기 없이도 누가 봐도 예쁘다 할 법한 얼굴이었다. 남편에게 목을 졸려서 턱 아래로 시뻘겋게 자국이 남았고, 쓰러진 채로 무릎을 밟히는 바람에 다리를 절었다. 창피함과 억울함과 슬픔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여자를 들것에 싣고 나가는데, 여전히 밝은 표정의 아이가 잘 가! 하고 인사했다.


 귀소 하는 중에 연달아 출동이 걸렸다. 시내의 모 수학학원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영어학원 말고는 학원이라고 할 만한 데 가보질 못해서 좀 궁금했다. 그땐 공부하려고 학원에 온 놈 절반, 친구랑 놀려고 온 놈 절반인 느낌이었다. 학교보다는 다소 자유로운 공기였고, 선생님들도 재밌었다. 그래서 난 학원 가는 게 좋았다.

 출동한 곳은 내가 알던 학원과는 달랐다. 고시원만 한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적게는 한 명, 많게는 네 명까지 수업을 듣는 곳이었다. 유행하는 스파르타 학원인가 뭐시긴가 같았는데,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교실 한 구석엔 여학생 하나가 나랑 똑같이 숨 막혀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예상대로 생체징후는 하나 이상이 없었다. 여학생은 어지러워서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여기 처박혀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기겠다. 속으로만 뇌면서 학생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병원에는 학생 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응급실 입구에 비상등을 켜고 정차한 고급 승용차, 명품 백, 구두, 비싸 보이는 시계, 곱슬거리는 반백에 뱀 떼가 지나듯 굵게 패인 주름, 굳게 다문 입, 뿔테 안경, 그 안쪽의 차가운 두 눈.

 뭐 때문에 병원 온 겁니까. 학생 아버지가 물었다.

 열이 난다고 신고가 들어왔어요. 저희가 도착했을 땐 쓰러져 있었고요.

 쓰러져요?

 네.

 아니 왜 그러지.

 공부하다 스트레스받으셔서 그런 지도 모르죠.

 고 3이 다 스트레스받는 거지.

 학생 아버지는 영 맘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딸의 얼굴을 봤다. 딸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들것에 누워 정면만 응시했다. 마스크를 썼지만 미간까지 이어진 콧날이 빨개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실핏줄이 터져서 흰자위가 온통 붉었다.


 귀소 하니 거의 퇴근시간이었다. 종일 못 마신 커피를 마시려고 소방서 뒷마당으로 갔다. 동료 하나가 심각한 얼굴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뭔 일 있어?

 형.

 어.

 고등어 죽었어요.

 아니 왜?

 제가 죽였어요.

 고등어는 소방서 뒷마당에 살던 들고양이 새끼 중 하나였다. 노란 놈은 치즈, 까만 줄무늬는 고등어라고 불렀다. 고등어는 펌프차 밑에 들어가서 놀다가 죽었다. 뒷마당 한쪽에 누가 무덤을 만들어 놓은 게 보였다.

 사고라고. 누가 차 밑을 살핀 다음에 출동을 하겠냐고 위로했지만 동료는 말이 없었다. 조금 있으니까 고등어 엄마가 뒷마당에 나타났다. 동료가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거렸다. 미안해. 그리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고등어 엄마는 이엉이엉 하고 울었다. 아마도 앞으로 계속 이엉이엉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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