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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25. 2023

당신이 더 귀하다

 아파트 복도는 구조대와 구급대, 지휘대 직원까지 모여 빼곡했다. 여자친구가 죽으려 한다는 지령을 받고 달려간 참이었다. 신고자는 남자였다. 이별을 통보한 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여자로부터 실시간으로 목을 매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단다. 그는 전 여자친구의 생사를 119에 맡기고 싶은 건지 현장엔 나타나지 않았다.

 문 열어주세요! 안에 계세요!

 경찰은 왜 안 와?

 원래 이런 건 빨리 오는데, 이상하네요.

 계세요! 안 열어주시면 파괴합니다!

 수 분을 대기했지만 문 너머에선 기척이 없었다. 점점 입이 말랐다. 빠루를 들고 있던 직원이 지휘관에게 눈짓을 했다.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악 문 틈으로 지렛대를 욱여넣으려는 찰나,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세요.


 팬티만 겨우 걸친 중년 남성이었다. 금방 샤워를 마쳤는지 몸에서 비누향이 났다. 모여있던 직원들은 하나 같이 눈이 동그래져서 남자를 봤다. 놀란 남자도 이게 뭔 난린가 싶어 입을 벌리고 쳐다봤다. 최초 신고를 경찰이 받았는데, 우리 측에 지원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주소지 정보가 잘못 전달된 것이었다. 지휘관이 상황을 설명하고 거듭 사과를 한 덕에 남자도 별 말은 없었다. 빠루로 손잡이를 뜯어낸 뒤라도 허허하고 넘겼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다시 지령을 받아 이동했다. 경찰 쪽에서 먼저 도착해 요구조자의 안전이 확보된 상황이라는 무전이 왔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구급대는 계속 진행했다. 현장엔 남자 경찰이 하나, 여자 경찰이 하나 있었다. 여자 경찰이 목을 매겠다고 전화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표정이 누그러지고 한 번씩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많이 진정이 된 듯했다.


 겨우 이십 대 중반이나 됐을까, 여자는 앳된 모습이었다. 길고 까만 생머리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화장기 없어도 빛이 났고, 아직 젖살이 남아 통통했다. 집에 있느라 옷을 대충 걸쳤는데도 가늘고 곧은 몸매가 드러나 예뻤다. 현장에서 누가 예쁘네 마네 평가질이냐 욕을 먹을지 모르겠는데, 달리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렇게 젊고 예쁜데 저를 버린 사람 때문에 죽으려 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다행히 진심으로 목을 매려던 건 아니었는지 아니면 신고를 받고 달려온 이들 덕분에 마음을 접었는지는 몰라도 여자는 죽지 않았다.


 사실, 내 맘을 찢어 놓는 이들 때문에 죽을 결심을 한다는 건 쉽지 않다. 내 삶이 그들의 삶보다 훨씬 더 귀하단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똑똑해도, 돈이 많아도, 예뻐도, 심지어는 한때 사랑했어도 나 자신보다 귀하진 않다. 하물며 나를 괴롭게만 하는 사람들의 인생 같은 건 굳이 신경 쓸 이유도 없다. 그들은 젠체하며 힘으로 당신을 내리누르려 하지만 실상은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이라서 그렇다. 그렇게 해야만 겨우 자신을 증명하는 5급수 인생들이라 그렇다.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물에서 당신이 물고기가 되어 줄 필요는 없다.


 며칠 전에 아까운 사람이 또 죽었다. 너무 늦어서 위로라고 할 만한 게 못 되는 게 민망하고 미안하다. 지금은 좋은 곳에 있을 친절한 그녀에게 마음이라도 전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는다.

 

 당신이 더 귀하다.

 이제 맑은 물에서 헤엄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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