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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22. 2023

요새 핫하다는 노란 봉투

 나 어릴 때 방구탄이란 게 있었다. 손바닥만 한 은색 비닐에 Fart Bomb이라고 적힌 물건이었다. 방구탄은 일정한 압력을 가하면 내부의 화학물질이 뒤섞이면서 부풀어 오르다 펑 터졌다. 그러면 계란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장난기 많은 아이들은 교실에서 친구가 화장실 간 사이에 몰래 의자 위에 방구탄을 올려 두었다. 방석이 있으면 그 아래에 숨겼다. 얼떨결에 방구탄을 엉덩이로 뭉갠 당사자는 씩씩대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범인이 내가 그랬소 하며 나서는 일은 없었다. 내 생각엔 낄낄대던 모두가 범인이었다. 이미 냄새는 퍼졌고, 결백한 엉덩이는 누명을 쓴 뒤였다. 간혹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친구와 너무 신나게 웃던 친구가 멱살잡이를 하는 일이 있었지만 대체로 재미있었다. 그건 장난이었으니까.


 경찰 공동대응 건으로 신고가 들어왔다. 지령서를 확인하던 동료 직원이 말했다.

 형, 이거 그건데요?

 뭐.

 노란 봉투요.

 노란 봉투가 뭔데.

 이거 열면 호흡곤란으로 쓰러진데요. 무슨 약품 같은 게 들어있다나. 대만에서 보내는 거라는데요?

 아니 뭔 놈의 지랄을 그렇게 정성으로......

 아무튼 이거 지금 난리예요.


 노란 봉투를 수령한 곳은 시내의 모 병원이었다. N95 마스크와 니트릴 장갑을 착용하고 병원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랐다. 가로 세로 10센티 정도의 노란 봉투가 병원 안 쪽 탕비실 테이블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현장에는 경찰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리와 경찰 측 지휘관들이 서로 소방이 위험물을 수거해야 하네, 경찰이 수거해야 하네 기싸움을 벌였다. 그러던 중에 방독면을 쓰고 있던 경찰관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거, 수취인이 명확한데?


 정말 노란 봉투 바깥에 병원 간호사 선생님의 이름이 영문으로 적혀 있었다. 게다가 뉴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만이 아니라 중국에서 보낸 물건이었다. 혹시 뭐 시키신 물건 있어요? 방독면을 쓴 경찰이 물었다. 알리(Aliexpress)에서 팔찌를 하나 시키긴 했는데. 간호사의 대답을 들은 경찰이 가지고 있던 플래시로 봉투 겉면을 비추었다. 가위 줘 봐요.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을 다 나가게 한 뒤 홀로 탕비실 안으로 들어갔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도 긴장이 됐다. 잠시 후,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된 경찰이 방독면을 손에 쥐고 밖으로 나왔다. 팔찌야, 팔찌. 들어가서 보니 한쪽 면이 잘린 노란 봉투 옆에 금빛 꽃장식 팔찌가 비닐에 담겨 있었다.


 어제 일자로 전국의 노란 봉투 관련 신고는 구백 여 건에 달했다. 해외에서 배송 온 물건이 단순히 노란 봉투에 담겼다는 이유로 지레 겁을 먹고 신고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몇 건은 실제로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미지 시료’가 담긴 것으로 확인되었다. 추측컨대 독극물을 살포한 자는 이 땅에 공포와 혼란을 야기하려 했던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노란색 봉투만 보아도 불안에 떨게 되었다. 이 나라가 더 이상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나 어릴 적 방구탄은 짓궂긴 해도 장난에 불과했다.  그러나 노란 봉투는 사람의 목숨을 걸고 벌이는 저급한 도박이다. 거기엔 철없던 시절의 순수한 재미 같은 건 없다. 고도로 진화한 악(惡)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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