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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20. 2023

할머니가 뭐가 죄송해요

 구급차를 타는 노인들을 보면 위화감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아픈 건 이해하겠으나 지나치게 움츠러들어 있었다.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인 듯싶었다. 아픈 노인들은 함께 동승한 보호자의 눈치를 보고, 요양보호사의 눈치를 보고, 심지어 내 눈치도 봤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건 아마도 내 주변의 노인들과 심히 비교가 된 탓이리라.


 아흔이 다 된 우리 할머니는 아직 허리가 굽지 않았다. 며칠 전에 오랜만에 전화드렸더니 집에서 넘어져 갈빗대가 셋이나 나간 걸 그제야 이야길 했다. 시골 사는 둘째 아들(울 아버지) 집에 놀러 오면 몇 시간이고 깻잎이며 고추며를 뙤약볕에 앉아 따 가신다. 따다 드린다고 앉아 계시라고 말해도 말 안 듣는다. 때때로 할머니는 곱게 단장을 하고 보무도 당당히 집을 나서는데, 이날은 교회 성가대 연습하는 날이다. 젊은 사람들처럼 몸은 못 써도 마음만큼은 젊어서, 손흥민 선수가 축구 경기 나오는 날은 꼭 달력에 표시해 뒀다가 새벽이라도 챙겨 본다. 할머니는 주름만 빼고 모든 게 젊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죽기 직전까지 아프단 얘기를 안 했다. 돌아가신 날에만 유서에 아파서 안 되겠다 하고 적은 뒤 스스로 가는 길을 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죄송한 게, 나는 외할머니가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그만큼 자식, 손주들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없었다.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내가 놀러 올 적마다 늘 고봉밥에 짜디 짠 강된장 찌개를 끓여 밥상을 차려 주고, 봉투에 5만 원 짜릴 넣어 쥐어드리면 이튿날 5만 원을 더 보태서 돌려주는 사람이었다. 물 샐 틈 없는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한 없이 다정한 사람.




 노인은 워커(보행기)를 잡고 걷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방바닥을 얼굴로 들이받는 바람에 코뼈가 부러져서 연신 피가 쏟아졌다.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던 임플란트 네 개도 전부 뽑혀 나갔다. 노인을 보러 집에 들른 자식들은 방바닥이 온통 피칠갑인 걸 보고 기겁을 했단다. 노인은 혼자 살았다.


 출혈은 거의 멎었으나 나이도 있고 얼굴 외에 다른 부위의 외상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이송을 서둘렀다. 노인은 귀가 먹어서 묻는 말에 제대로 답을 못했다. 이름이 뭐예요, 생년월일이 뭐예요, 물어도 무슨 일 있냐는 듯 멀뚱히 내 눈만 봤다. 옆에 있던 보호자가 하나하나 답을 해 주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환자분류소에 들것을 밀어 넣고 대기하는 중에 노인이 무어라 웅얼거렸다. 뭐라고요? 뭐라고요 할머니? 몇 번을 묻자 조금 또렷하게, 그러나 여전히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말하는 노인의 눈가에 마른 눈물이 번졌다. 눈물을 삼키는 바람에 출혈이 멎었던 코에서 피와 물이 섞여 흘러내렸다. 화가 났다.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화가 났다.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살고 있길래 지금 상황에서 죄송합니다가 나오는 건지 캐묻고 싶었다. 가슴이 뛰어서 길게 말은 못 하고 그냥 팽 쏘아붙였다. 할머니가 뭐가 죄송해요. 그 목소리가 너무 쌀쌀맞았던 탓인지, 할머니는 입을 닫았다.


 수고하셨어요. 인사하는 할머니 가족들에게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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