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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07. 2023

나의 내시경, 그 남자

 아침에 펑크린 한 통을 다 부었는데.


 설거지한다고 부엌 개수대에 담긴 물이 도무지 내려갈 생각을 않았다. 차가운 물도 아니고 뜨거운 물이었다. 요 며칠 물 빠지는 속도가 주춤주춤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멈추다시피 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도 문제가 있다고 느끼긴 했는데 전셋집이라 손볼 생각을 않았다. 막혔다 싶었을 때 펑크린이나 뜨거운 물을 한참 부어주면 그런대로 제 구실을 했고, 그렇게 4년을 버텼다. 그런데 이젠 그 무엇도 소용이 없었다. 동맥경화가 이래서 무서운 거구나.


 인터넷을 뒤져 배관청소업체를 찾았다. 전국적으로 체인망을 가지고 있고 1년 내 무상 AS를 약속한 업체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건 바로 건너뛰었다. 너무 메이저해서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메이저니 마이너니를 따지는 게 우습긴 했지만, 여하튼 개인이 운영하는 청소업체 중에 이용 후기가 믿음직해 보이는 곳을 골랐다. 저녁 8시였고, 사장님은 밤 10시까지 상담전화를 받는다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신호가 채 세 번도 가기 전에 전화가 이어졌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싱크대 배관 막힌 것 때문에 연락드려요.

 아, 네. 내일 아침 9시 괜찮으신가요?

 애들 학교랑 유치원 데려다주면 9시 조금 넘어야 할 것 같아요.

 문자 넣어드릴게요. 주소 주세요. 9시 반까지 가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의 첫인상은 동네 아는 형 같았다. 더벅머리에 사각 뿔테 안경 아래 선한 미소가 은은했다. 영업하는 사람 특유의 사람 좋은 표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깨끗하게 빨아 입은 청바지와 흰 티셔츠를 입었고, 작업용 조끼를 걸쳤지만 추레해 뵈지 않고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집 안으로 들여온 배관 청소용 장비도 잘 관리하는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이거 진짜. 부엌 싱크대의 플라스틱 배관과 바닥으로 통하는 메인 배관의 연결부를 살피던 사장님이 말했다.

 좀 심각한가요.

 끝까지 막혔네요.

 아아.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사장님은 대형 진공청소기처럼 생긴 기계로 연결부 주위의 오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수구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기 시작해서 사장님이 시킨 대로 방문을 닫고 양측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작업하는 곳 가까이 갈수록 냄새가 심했는데 사장님은 아랑곳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연결부의 오물을 다 빨아들인 뒤 두 배관을 분리했다. 사장님은 둘둘 말린 전선 끝에 소형 카메라와 조명이 달린 내시경으로 메인 배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시경 조작부 모니터에 배관 상태가 실시간으로 보였다.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떡이 된 기름이 배관 아래로 갈수록 숨통을 조이듯 물길을 막고 있었다. 펑크린이나 뜨거운 물로 어찌해 볼 수준이 아니었다.


 배관에서 내시경을 회수한 뒤, 사장님은 이번엔 피복을 입힌 두터운 철사 끝에 둥근 모양으로 쇠사슬을 매단 장비를 꺼냈다. 배관에 쌓인 슬러지(기름때)를 파쇄하는 장비였다. 장비는 전동드릴을 연결해 작동하는 방식이었는데, 전동드릴이 작동할 때마다 쇠사슬이 회전하며 배관에서 슬러지를 벗겨냈다. 어느 정도 작업을 마치면 파쇄장비를 회수한 뒤 내시경으로 배관 상태를 살피고, 다시 파쇄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계속했다. 장비를 넣었다 빼는 중간중간 오물이 밖으로 튀어나오면 가져온 걸레로 꼼꼼하게 닦아냈다. 그 모습에서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져 한 마디 던졌다.

 사장님, 결혼하셨지요?

 애가 둘이에요. 고객님은요? 뒤돌아 씩 웃으며 물었다.

 저도 둘이에요.

 아들 딸?

 딸 둘이요.

 아아, 저는 아들만 둘.

 힘드시겠어요.

 그쵸. 흐흐흐 웃는 얼굴에서 일하는 사람의 애환과 동시에 제 피붙이를 떠올리는 기쁨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도 구급차 탈 때 저런 표정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사장님은 양반다리에 허리를 반으로 접고 거진 두 시간을 일했다. 내가 보기엔 그만하면 됐는데 내시경으로 보아 배관 속에 기름 얼룩이라도 남아있으면 다시 장비를 넣어 작업을 반복했다. 마침내 화면에 비친 배관이 번쩍거릴 만큼 청소가 된 뒤에야 사장님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물 아깝다 생각하지 마시고 뜨거운 물 조금씩 틀어놓고 설거지하세요.

 아, 네.

 마무리할 땐 큰 보울에다 뜨거운 물 받아서 두어 번 흘려주시고요. 아, 소고기 기름은 웬만하면 붓지 마세요.

 소고기 잘 못 먹습니다.

 사실 저도 그래요.


 우린 마주 보고 웃었다.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꽤 오래 알고 지낸 기분이 들었다. 몸을 웅크리고 매일 하수구 냄새를 맡는 그나, 좁아터진 처치실에서 매일 피 냄새를 맡는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었다. 내시경처럼 서로가 훤히 들여다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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