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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04. 2023

가슴이 커서 고민이에요

 자랑 아니고 난 가슴이 크다. 어렸을 때부터 컸는데 키가 자라면서 가슴도 같이 자란 건지 점점 더 커지다가 요새 들어선 군살까지 붙어서 피크다.

 운동하는 사람들한테선 '이야, 가슴 좋은데' 같은 말을 종종 듣지만 뭐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네가 좋은 건지 아니면 내가 가슴이 커서 좋아할 거라고 네 멋대로 생각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제목만 보고 오해할까 봐 한마디 하자면 나는 남자다. 39년 평생을 남자로 살았고 앞으로도 남자로 살 생각이다.


 운동을 하면 사람마다 성장이 잘 되는 부위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허벅지가 빠르게 굵어지고, 어떤 사람들은 이두, 삼두가 잘 자란다. 복근이 예쁘게 잡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난 가슴이다. 운동 짬밥이 늘어날수록 가슴도 속절없이 불어났다. 부러 가슴 운동은 피하는 편인데도 그랬다.  간혹 팔 굽혀 펴기라도 조금 하는 날엔 녀석은 화를 주체 못 하고 높은 파도가 되어 넘실댔다.

 

 가슴이 크면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이 생긴다. 일단 옷이 안 맞는다. 재작년 이맘때 입었던 여름 셔츠 같은 건 걸쳐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보나 마나 단추를 잠그면 팽팽하게 겨드랑이 양 쪽으로 잡아당겨져서 셔츠 중간중간 가위로 오린 양 벌어질 게 뻔하다. 여름에는 보통 반팔 티셔츠 한 장만 달랑 걸치고 다니는데, 사실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가슴 자체가 드러나는 것도 민망하지만 그 위에 삐죽 솟아오른 게 특히 문제다. 세상 사람들 보시오, 내 가슴이 여기 있소. 하는 것 같다. 며칠 전엔 내가 신경 쓴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내가 뭐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한 장씩 떼서 쓰는 동그란 밴드였다. 제품명은 숨바꼭지.


  어느 날은 가슴 아래 옆구리 쪽으로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생겼다. 의사가 처방해 준 연고를 바르려고 고개를 숙이는데 환부가 가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 손으로 가슴을 쥐고, 들어 올려서(?) 확인한 뒤에 연고를 발랐다. 굳이 거울 앞까지 찾아가 연고를 바르기 귀찮아서 매번 가슴을 잡아 올린 뒤에 연고를 발랐다. 익숙해지니 어렵진 않았는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큰 가슴을 두고 바다 같이 넓다라는 표현을 쓴다. 뛰어들고 싶다고도 얘길 한다. 일단 와이프는 쑥쓰럼을 많이 타서 별로 뛰어들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애들은 종종 달려들지만 언제까지 아빠 가슴에 안기려 할지가 의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큰 가슴이 쓸모 있어지는 건 오직 그때뿐인데, 시간이 지나 안기려 하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무지 섭섭할 것 같다. 큰 가슴만큼이나 돌아오는 쓸쓸함의 크기도 클 것 같아 걱정이다.


 가슴을 줄이던 마음을 줄이던 더 나이 먹기 전에 무슨 수를 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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