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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17. 2023

왕따 팀장님과 능이백숙

 오늘 뭐 먹으러 간데?

 능이백숙이요.

 또?

 네. 팀장님이 좋아하시잖아요.

 혹시 사장 아주머님이 팀장님 애인인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었지만 정말인가도 의심이 되었다. 한 달 걸러 한 번 하는 회식을 꼭 능이백숙을 먹으러 갔다. 처음 한 두 번이야 윗사람 입맛에 맞춰준다 셈 치고 쫓아갔는데 팀장님은 1년 내내 능이백숙이었다. 거기다 지역사회 경기부양을 위해 이 집 저 집 다니는 것도 아니고 꼭 같은 곳이었다. 화장 곱게 하신 사장님의 당찬 얼굴이 간판에 자랑스레 걸려 있는 그곳.


 팀장님 오늘은 갈매기살 어떠세요.

 갈매기살?

 네 OO 생고기라고 S대학 병원 올라가는 언덕길에 있는 거요.

 아 거기? 맛없어.

 그래요? 그럼 어디로 갈까요.

 그냥 가던 데 가지 뭐.

 예.

 대충 이런 식이었다. 회식하라고 부서 운영비로 떨어지는 얼마간의 돈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개인이 부담하는 돈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굳이 시간을 들여서 회사 사람들과 밥을 먹는 자린데, 나 같은 유부남녀들은 회식이 잡히기 수 주 전부터 허락을 득(?)해 부푼 마음으로 나오는 자린데 메뉴가 늘 같으니 솔직히 좀 짜증이 났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인사발령으로 인해 새로 온 안전센터장과 함께 회식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경비를 운용하는 직원이 슬쩍, 센터장님도 새로 오셨는데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요 하고 팀장님께 물었다. 오랜만에 능이백숙이나 먹지 뭐.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제일 맛있어. 덧붙이기까지 해서 그 직원의 회유는 수포로 돌아갔다.


 문제는 한참 다들 술기운이 오를 즈음 일어났다. 팀장님이 새로 부임한 센터장에게 직원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센터장은 그 직원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고 하는 중이었다.

 센터장님, 얘는 OOO입니다. 진압대원이고요.

 아 그래? 반가워. 잘 부탁해.

 불은 잘 끄는데 업무 처리가 영 별로예요. 아직 많이 배워야 되죠.

 음.

 그리고 얘는 XXX입니다. 구급대원이고요.

 그래, 잘 부탁해.

 얼마 전에 구급차 사고 한 번 냈어요. 것도 제가 잘 처리했습니다. 그래도 뭐, 일은 잘해요.

 직원을 소개하는 자린지 대놓고 험담을 하는 자린지 헷갈리기 시작할 즈음 팀 내에서 차석(팀장 바로 다음)을 맡은 직원이 한 마디 했다.

 팀장님이 저희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으셨나.

 뭐?

 아니, 자기 할 일 밑에 애들한테 다 넘기시잖아요. 유튜브만 보시고. 그래서 팀에 관심 없으신 줄 알았죠.

 

 이후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욕지거리가 오가고 새로 부임한 센터장이 되려 직원과 팀장을 중재하는 이상한 자리가 되었다. 다들 입맛이 떨어져서 회식은 일찍 끝났다. 시커먼 국물에 담긴 손도 대지 않은 닭고기가 테이블마다 덩그러니 남았다. 팀장님이 먹던 자리만 빼고.


 그날부터 팀장님은 직원들과 아예 말을 섞지 않았다. 이후의 회식은 팀장님 없이 이루어졌다. 물론 예의상 물어는 봤지만 안 간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능이백숙을 먹자고 말했으면 혹 참석했을지도 모르나, 그렇게 묻는 직원은 없었다. 팀장님은 그렇게 세 달도 넘게 말없이 있다가 다른 지방으로 인사 발령이 나서 떠났다. 들리는 소문에 그곳 직원들을 쥐 잡듯 한다고 한다. 잘해줘 봐야 기어오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모양이다. 물론, 당신 외엔 아무도 동감할 수 없는 깨달음이긴 하지만.


 구불거리는 능이 한 줌, 대파, 양파, 통마늘과 함께 토종닭을 삶는다. 엄마가 하루 내도록 가마솥에 끓여낸 능이백숙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우리 식구 모두가 사랑하는 별미다. 야생에서만 구할 수 있는 능이 덕에 검은빛이 나는 국물은 오묘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고, 닭고기는 씹을수록 고소하고 향기롭다. 일 능이 이 송이(능이 하나가 송이 둘보다 낫다)란 소문이 허투루 난 게 아니란 걸 실감하게 되는 진미다. 그런데, 팀장님이 사랑했던 능이백숙은 왜 그렇게 맛이 없었을까. 역시 닭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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