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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19. 2023

3초 안 지났으니까 괜찮아

 그거 알아?

 뭐.

 배스킨라빈스, 가게 생기는 위치에 공통점이 있어.

 그래?

 밖에 봐봐.

 나는 정말 이런 눈치가 없어서 친구가 뭔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각자 딸내미들을 데리고 앉아 있었다.

 모르겠는데?

 횡단보도 말이야, 횡단보도.

 아아.

 꼭 횡단보도 앞에 생기더라고. 신호 기다리다가 뒤돌아 보고 그냥 들어오게끔 하는 거.

 신기하네.

 뭐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우쭐대는 친구를 향해 고개 한 번 끄덕이고는 내가 고른 카라멜 팝콘맛 아이스크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친구 딸이 들고 있던 콘에서 겨우 한 입 먹은 아이스크림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친구가 몸을 날려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을 잡아보려 했으나 불혹 언저리의 비대한 몸뚱이는 생각처럼 재빨리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소리 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우리 세대의 당연한 본능으로 나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아, 두우울. 그 순간, 친구의 큼지막한 맨손이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퍼올리더니 그대로 비어 있던 콘 위에 얹었다. 그리고 자신이 먹던 아이스크림을 딸내미에게 건네고, 자긴 3초 만에 죽음에서 부활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으려 했다.


 야야. 내가 부르자,

 어, 왜. 친구가 눈치를 보며 답했다.

 그거 아냐.

 그래?

 시대가 바뀌었어.

 3초 안 지났는데.

 그러니까. 너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어.

 옛날엔 떨어진 피카츄 돈까스(양념 바른 거)도 주워 먹었어.

 이제 그러면 안 된다고. 버려, 새로 사줄게.

 이날은 내가 지난 생일에 받은 3만 원짜리 아이스크림 쿠폰으로 계산을 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마침 쿠폰 잔액도 만 원인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못내 아쉬운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아이스크림을 멀뚱히 쳐다봤다. 버리라고. 한 마디 더 쏘아붙이자 그제야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매장 직원에게 가져갔다. 아이스크림만 버리고 콘은 주세요. 말하는 것까지 말릴 수는 없었다.


 라떼는 흙도 퍼먹었다. 농담 아니고, 지금처럼 우레탄 바닥이 아닌 고양이 똥 섞인 모래바닥 놀이터에서 놀던 시절엔 그랬다. 컵떡볶이에 꽂힌 이쑤시개 한 개로 이 놈 저 놈이 돌아가며 떡을 찍어 먹었고, 그러다 떨어지면 후후 불어서 모래와 함께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다. 놀이터에 애기 데려 나온 엄마들 손엔 주로 새우깡이 들려 있었는데(유기농 아기 과자 그런 거 없음), 애가 손에 쥐고 먹다 흘리면 얼른 주워서 후후 불은 뒤에 도로 손에 쥐어 주었다. 애는 그걸 의심 없이 받아먹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엔 최소한의 양심 기준이란 게 있었다. 바로 3초 법칙이었다.


 떨어진 음식이라도 3초 안에 먹으면 괜찮다. 오박사님도 안 계시던 시절에 누가 그런 말을 했을까. 어느 저명한 학자가 주창했을 리는 만무하고, 전쟁 세대를 지나며 아직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의 왜곡된 신앙 같은 게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도 3초가 지나지 않았으면 온전하리란 믿음. 3초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 길바닥의 세균도 미처 발을 떼지 못했으리란 믿음. 어쩌면 그건 조금 덜 팍팍했던 옛날의 모습을 닮았다. 한 번의 실수로 사람에게 실패자의 낙인을 찍지 않았던, 후후 불면 다시 재기할 수 있으리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그날의 모습 말이다.


 나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때때로 3초 법칙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작은 실패를 한 정도로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믿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옛날과 많이 달라진 오늘,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주워 먹는 게 눈치 보이는 오늘도 흥흥 콧방귀 뀌며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실수를 두고 세상이 침 튀기며 손가락질해도, 야야, 3초 안 지났으니까 괜찮아. 하고 말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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