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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ug 10. 2023

떡볶이의 마음


 보통 때는 내가 뭔 일하는 사람인가 어디 가서 자랑하지 않는다.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분에 넘치는 응원과 격려를 받고 살기 때문에, 여기에 더해서 내가 소방관이다! 하고 떠드는 일 자체가 뜨악하다. 좋은 일 하고 살면 굳이 입 떼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준다.  잘 차려입고 아프거나 슬픈 사람들 찾아가서 사진 한 방 우아하게 찍지 않아도 안다. 정말 좋은 일은 그런 거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내가 이런 사람이요. 하고 말을 해야 하는 때가 있다.


 어른 둘, 아이 둘이요.

 오만 원입니다.

 소방관 할인 되지요?

 네. 공무원증 가지고 계신가요.

 여기.

 확인되셨습니다. 삼만 육천 원입니다.

 남들은 4인 가족 오만 원에 보는 영화를 삼만 육천 원에 볼 수 있다니. 뭔가 죄송한 맘이 들긴 하지만 가장으로서 공무원증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팝콘에 음료까지 추가해도 오만 원을 넘기지 않는다. 어쩐지 횡재한 기분으로 아이들 손을 하나씩 잡고 좌석을 찾아가 앉았다. 둘째가 보고 싶어 했던 픽사(pixar)의 최신작 만화영화였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속으로 뇌었다.


 조졌다.


 아내 쪽을 쳐다보니 나와 같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더빙인 줄 알았는데 자막영화였던 것이다. 싸게 표를 끊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제일 중요한 걸 확인을 못했다. 우리 애들은 조기 영어교육 뭐 이런 거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영어에 내성이 없다. 아이들 쪽을 보니 벌써 고개를 갸우뚱하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집에 가자고 징징대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자 아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픽사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정말 살아있는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디테일한 배경 묘사, 사람처럼 말하고 표정 짓는 캐릭터, 더해서 감수성을 자극하는 음악과 허를 찌르는 유머까지. 아이들도 어느새 픽사의 마법사들에게 매료되어 대사도 못 알아듣는 영화를 입을 헤 벌리고 감상하고 있었다. 영화의 메인 테마는 사랑이었다. 물과 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뭘 알긴 아는 건지 아이들은 어떡해, 어머 어머를 연발했다. 아내는 그 옆에서 울고 있었다.

 

 결국 두 시간 동안 무탈히 영화를 보고 나왔다. 손을 잡고 상영관 바깥으로 걸어 나오며 둘째에게 물었다.

 재밌었니?

 응. 근데 아빠.

 응?

 저녁은 뭐 먹어?

 아직 네 신데.

 배고픈데.

 생각 좀 해보고.

 방학이라 제일 고민인 게 매일 뭘 해먹일까다. 아침밥 먹이면서 점심 메뉴를 고르고, 점심 먹는 동안 저녁 메뉴를 고심한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어디 나갔다 올 일이라도 있으면 밥 해 먹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배달시킬까, 나가 먹을까 말하면 이놈의 식구들은 당최 그럽시다, 하고 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집에서 먹는 게 맛나단다. 이럴 땐 당장에 그 요리가 생각난다. 실패가 없는 요리. 세상 만들기 쉬운 요리. 유행이 없어서 언제 먹어도 맛있는 요리.


 대파, 오뎅, 베이컨(소시지)을 큼직큼직하게 썬다. 고추장 한 숟갈에 간장, 미림을 적당히 배합해서 양념장을 만든다. 떡과 재료, 양념장을 끓는 물에 넣고 떡이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중불로 끓인다. 시장 맛을 내고 싶으면 미원 한 숟갈 넣으면 되지만 애들 먹일 거니까 참고, 대신 굴 소스로 모자란 맛을 보충한다. 적어놓고 보니 정말 뭐 없다. 저대로 만들기만 해도 맛있다. 떡볶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떡볶이는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음식이다. 맵고, 짜고, 달다. 떡볶이가 더 맛있어지려면 더 맵거나, 더 짜거나, 더 달게 만들면 된다. 집에서 만든 떡볶이가 맛이 없다면 그건 뭐 어떻게 잘 만들어 볼까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냥 고추장 한 스푼, 설탕 한 스푼, 애매할 때는 미원 한 스푼 넣으면 해결인데, 건강을 생각해서 혹은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려다가 떡볶이를 망친다. '브로콜리 떡볶이' 같은 게 탄생한다.


 밥 먹어라. 굳이 얘길 안 해도 떡볶이를 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알아서 식탁으로 모인다. 메뉴가 떡볶이 한정일 때긴 하지만 수저도 알아서 놓는다. 항상 양을 충분하게 만드는데도 모자란다. 바닥에 남은 국물까지 밥을 비벼 해치우는 걸 보고 있노라면 여기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연금술이 작용하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어쩌면 떡볶이가 너희를 향한 내 마음을 닮아서 그리 잘 먹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오마카세 초밥처럼 한 점 한 점 섬세한 마음을 쥐어 전하라고 가르치지만 아빠에겐 그런 재주가 없다. 책을 봐도 잘 모르겠다. 괜한 흉내를 내려다가 온전히 너희를 사랑할 수 없을까 겁이 난다.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 떡볶이가 되어 바닥 없는 이 마음을 전하는 수밖에 없다.


 더 맵게, 더 짜게, 더 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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