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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ug 15. 2023

장어나라에 살고 싶다

 말복에 태풍이 오는 바람에 며칠 미뤄 복달임을 하기로 했다. 복달임은 다른 말로 복놀이라고도 한다. 삼복더위에 몸을 보하기 위해 음식을 해 먹는 걸 일컫는다. 초복, 중복엔 부모님 시골집에서 능이백숙을 맨입으로 얻어먹었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 말복까지 입 싹 닦고 넘어가긴 양심이 찔렸다. 그래서 오는 복달임엔 장어를 사 가겠노라 얘기를 해 두었다.


 양식장을 직영하는 식당이 있어 찾아갔다. 냉장 매대에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짜리로 소포장된 장어가 진열되어 있었다.

 몇 분이서 드실 거예요? 사장님이 물었다.

 어른 넷에 애들 둘이요.

 그럼 세 마리면 충분할 거예요.

 네 마리 주세요.

 많지 않을까요.

 모자랄지도 몰라요.

 2킬로에 13만 원이 들었다. 100그램에 6천 원이 조금 넘으니까 저렴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한우 먹는 것보단 싸게 먹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아주 실컷 먹으리라. 작정을 하고 부모님 댁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숯에 불을 붙였다. 야외에서 바베큐를 처음 하는 사람들을 위해 팁을 하나 주자면, 숯불구이는 성질이 급하면 망한다는 것이다. 숯이 활활 타오르는 시점에 바베큐 틀에 넣고 고기를 구웠다간 십중팔구는 겉은 까맣고 속은 시뻘건 고기를 먹게 된다. 일단 기다려야 한다. 검은 숯이 거의 흰 빛깔을 낼 때까지 기다려야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고 그을음도 생기지 않는다. 아무 말이나 생각 없이 뱉는 사람들이 쉽게 관계를 망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도 숯 같아야 한다. 남의 이야기를 오래 듣고 입을 떼야 뒤탈이 없다.


 장어 살 부분을 먼저 노릇해질 때까지 굽고, 뒤집어서 껍질 쪽을 구웠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한입 크기로 잘라서 식당에서 이모님들 하듯이 세로로 세워두었다. 비싼 돈 주고 사온 놈이라 그런지 살점이 탱탱해서 아주 잘 서 있었다. 난 장어는 별로야.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소주까지 곁들여서 잘 드셨다. 할머니를 닮아 육고기보다 생선을 더 좋아하는 둘째가 특히 잘 먹었다. 나는 식구들 접시에 다 익은 장어를 수시로 한 점씩 올려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많이 못 먹었다. 대신 불판 가장자리에 꼬리만 모아두었다가 이따금 집어먹었다.


 사실 장어라고 뭐 얼마나 몸에 좋겠는가. 자양강장의 대명사로 여겨지지만 그래봐야 생선이고, 그놈이 본래 굵직하고 펄떡펄떡거리게 생겨먹은 거지 사람이 그걸 먹는다고 힘이 용솟음칠 거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 오래된 믿음, 장어를 먹으면 장어처럼 건강해진다는 믿음은 전설처럼 강력하다. 더군다나 쫀쫀하고 고소하며 입안에서 진하게 우러나는 맛은 그 강력한 믿음에 대한 철옹성 같은 근거가 된다. 보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장어 한 점을 집어, 눅진하고 달콤 짭조름한 간장소스에 찍은 뒤 초생강 한 조각을 올려 앙증맞은 제 입으로 집어넣는 6살 소녀를!

 

 아빠.

 응. 맛있니?

 난 장어나라에 살고 싶어.


 둘째는 이미 장어나라의 신도가 된 것 같았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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