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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ug 23. 2023

안경 쓰면 미남

 아이들 개학을 맞아 와이프와 동네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갔다. 나는 허리가, 와이프는 목에 사이좋게 디스크가 있다. 방학 동안 애들 보면서 틈틈이 운동은 다녔는데 스트레칭을 하거나 제대로 쉬질 못해서 몸이 축이 난 것 같았다. 다행히 여기 원장님이 명의라 침 한 방이면 어지간한 급성 관절통은 다 잡는다. 내가 의사였다면 침술의 효능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했을지 모르나 다행히 의사가 못 됐다. 사실 어디 아프고 쑤시면 정형외과보단 한의원을 자주 찾는다. 와이프도 비슷해서 이 점은 둘이 죽이 잘 맞는다. 옛날 사람들이라 그런 모양이다.


 한의원을 나와서 나는 삐걱대는 허리가 부드러워진 것에, 와이프는 안 돌아가던 목이 겨우 가동범위를 찾은 것에 대해 감탄하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걷다 보니 동네 안경점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하던 곳인데 주인아저씨가 키도 크고 잘생겼다. 거짓말 안 보태고 정우성 닮았다. 아저씨는 시간이 꽤 흐른 요즘도 예전과 달라지지 않은 미모를 자랑해서 솔직히 좀 가기 싫다. 요새 오래도록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와이프가 안경점에서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하나 사자고 하길래 아저씨 얼굴 한 번 보려는 건 아니고? 하고 농 반 진담 반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어쨌든 안경은 사야 했다.


 사실 나는 여기 안경점의 주요 고객 중 하나였다. 하지만 소방관 하려고 라섹 수술을 하면서 발길을 끊었다. 내가 시험 합격 소식을 전하며 맨 눈으로 안경점을 찾았을 때 짐짓 심각한 정우성의 표정이 된 아저씨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뭐, 그래도 잠시 뒤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긴 하셨다. 그 뒤로 거의 십 년 만에 안경을 맞추는 것이니 아저씨는 내가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보다 배는 더 기쁜 얼굴로 안경테를 추천해 주셨다. 빛 번짐 개선과 블루라이트 차단 정도의 기능만 하는 안경이라 렌즈 가격도 2만 5천 원으로 저렴했다. 아저씨가 추천해 주시고 와이프도 어울린다고 하는 테를 골라서 주문했다.

 이튿날에 안경을 찾으러 갔다. 9만 원이야. 하는 아저씨 말씀에 짐짓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표정을 하고 쿨하게 카드를 전해드렸다. 아저씨도 쿨하게 묻지도 않고 일시불로 결제를 했다. 안경테가 생각보다 비쌌다. 그냥 검정 뿔텐데. 내가 모르는 어떤 심오한 비밀이 숨어 있는 거겠지.


 아빠 못생겼어.


 안경 쓴 아빠를 보자마자 둘째가 한 마디 했다. 그러고 뭐가 그리 신나는지 내 속도 모르고 깔깔댔다. 언니 이거 봐봐. 너 지금 이거라고 했니. 첫째가 쪼르르 다가왔다. 한 일이 초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어울려. 내 표정이 밝아진 걸 눈치채고 둘째도 거들었다. 잘 생겼어. 넌 방금 전에 못생겼다고 말한 것 같은데. 아냐, 그런 적 없어.


 안경을 쓰니 눈이 편하긴 하다. 뭐든 애쓰다 보면 몸이건 마음이건 무리가 온다. 눈이 피로한 것도 내 딴에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결과니까 기분 좋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덕분에 오랜만에 아저씨 매상도 올려 드리고, 아내도 내 얼굴이 익숙지 않은지 꽤 오래도록 쳐다보는 것 같아서 좋다. 첫째는 안경 쓴 내가 정말 잘생겨 보이기라도 하는지 안 하던 질문도 했다.


 아빠는 어렸을 때 인기가 많았어?

 장난 아니었지.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어?

 아니. 아빠는 원래 결혼 안 하려고 했어.

 왜. 결혼하면 나 같은 예쁜 딸도 생기고 좋잖아.

 그건 그렇지.

 근데 왜 결혼 안 하려고 했어.

 네가 나올 줄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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