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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ug 20. 2023

라면은 밥이 아니야

 찬장을 열면 라면이 있다. 어지간해선 꺼내지 않는다. 굳이 라면을 끓여야 할 때마다 쪼들리던 날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하고 알아서 잘 먹고살고 있노라며 부모님께 큰소리치던 그때. 영어학원에서 하루 두 타임씩 시간강사로 일해서 달에 백만 원인가를 받았다. 말하자면 그건 자발적인 가난이었다. 다른 일을 한다거나 남는 시간을 활용해 벌이를 늘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매일 술을 마셨고, 담배를 많이 태웠다. 그걸로 번 돈의 절반은 날아갔지만 백만 원이면 대충 생활이 됐다. 라면이 있었으니까. 라면은 지금도 싸지만 옛날엔 더 쌌다.


 라면으로 해결하는 식사에 설렘은 없다.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 봉지를 열어 스프를 꺼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고 그 위에 대충 스프를 쏟는다. 면이 익는 동안 젓가락으로 몇 번 휘저어야 제맛이라지만 매 끼니 라면이라면 그마저도 귀찮아서 그냥 둔다. 그러면 면발 뭉치 위에 덩어리 진 스프가 고명처럼 올라간 자취생의 라면이 완성된다. 먹기 전에 담배에 불 먼저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인다. 종이컵 가장자리에 불붙은 담배를 올려두고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 식사는 금방 끝난다. 재가 갈고리모양으로 타들어간 담배를 들어 끝까지 태우고 종이컵에 넣는다. 라면 국물을 한 수저 떠서 담뱃불을 끈다.


 내가 승질이 뻗쳐서 진짜.


 퇴근 직전에 출동이 걸렸다. 이날은 시내에 구급차가 모자라서 급한 환자들도 제 때 구급차 이용을 못했다. 신고자이자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했다. 분명 구급차를 부를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거동이 가능한가 묻자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단다. 그럼 자차로 가시거나 택시를 이용하시는 방법도 있다고 돌려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어지럽다. 나는 꼭 구급차 타고 갈 거다. 비슷한 말을 수화기 너머로 끊임없이 주워섬겼다. 실랑이만 길어질 것 같아서 전화를 끊고 그냥 갔다. 만나면 한 마디 해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신고자의 집은 구도심의 골목 안 쪽, 그중에서도 언덕길을 이백 여 미터쯤 올라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경사가 심해서 올라가는 동안 롤러코스터에 실린 기분이 들었다. 구급차에서 내렸다. 신고자로 뵈는 아주머니가 집 앞에 나와 있었다. 낯빛은 시커맸고, 우울하다 못해 누가 죽었나 생각하게끔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장에 급한 상황도 아닌데 구급차를 부르시면 어떡하냐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아주머니의 옆에 그녀의 아들이 있었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였지만 키가 작았고, 많이 말랐다. 새치가 서리처럼 허옇게 내린 짧은 머리 아래 아주머니의 그것처럼 그림자로 뒤덮인 얼굴이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택시비가 아까워 구급차를 부르는 그녀의 삶이 자기 아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앞에서 아주머니를 타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라면으로만 끼니를 해결하다 보면 그게 온전한 식사라고 착각하듯, 마음의 가난도 익숙해지면 그것이 가난인지 잊어버린다. 아주머니의 아들이 부디 가난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하고 글을 맺고 싶었는데 솔직히 쉽지 않을 것 같다. 라면은 맛있고, 간편하고, 여전히 값싸기 때문이다. 대충 그렇게 먹고살아도 괜찮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면은 밥이 아니다. 삶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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