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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ug 24. 2023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남자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식구들 중 어느 누구도 떨어진 남자를 침대 위로 올려놓지 못했다.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남자는 9년 전에 시신경이 지나는 부근에 뇌종양 진단을 받았고, 최근에는 간경화가 왔다. 술, 담배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자의 부인은 그가 수술이 불가능한 부위에 종양을 가지고 산다는 데 대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간이 망가진 거라고 말했다. 남자를 들것에 싣는데 무릎이 삐걱거렸다. 최근에 함께 구급차에 타기 시작한 젊은 직원은 다행히 힘이 좋았다. 여자 직원이라는 편견이 무색할 정도였다. 덕분에 무사히 남자를 구급차에 실었다. 간이 완전히 망가진 남자는 전신이 누런 빛을 띠고 있었다. 죽음의 색이었다. 병원 가는 내내 헛소리를 했고 심전도 그래프도 불안했다. 함께 탄 남자의 부인에게 물었다. 구급차 안에서 심정지가 오면 소생술 하실 건가요. 그녀가 눈 밑이 벌겋게 부푼 눈으로 남편을 보며 말했다. 아니요. 남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함께 출동한 직원이 말했다. 스트레스가 아니고 그런 건 그냥 유전일 거예요.


 오후 4시쯤 폭우가 쏟아졌다. 시 외곽도로 사거리에서 마을버스 한 대가 뒤집혔다. 지난밤에 천안에서 구급차 사고가 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이 죽고 다쳤다. 센터장이 운전 조심해서 다니라고 구급대원들 모아 놓고 일장연설을 한 뒤였다. 그래도 어찌 되었건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버스가 뒤집혔다는데 미적미적 갈 수는 없었다.

 사고 현장엔 버스가 우측 측면을 도로면에 붙인 모양으로 뒤집혀 있었다. 앞, 뒤, 우측 창문은 전부 부서졌다. 차가 박살 난 것에 비해 타고 있던 사람들은 경미한 찰과상과 타박상을 호소할 뿐 눈에 띄는 외상이 없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나에게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난 버스 승객에게 밴드라도 붙여주라고 말했다. 밴드는 있었으나 붙여주지 않았다. 여전히 폭우가 쏟아졌고, 함께 출동한 타 관할 구급대와 함께 환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곳이 우선이었다. 세 명의 환자를 구급차 세 대에 나누어 병원으로 이송했다. 밴드 없이도 출혈은 금방 멎었다.


 오후 6시. 퇴근하는 길에 최백호 선생님의 ‘낭만에 대하여’를 카오디오로 재생했다. 어릴 적엔 반도네온 반주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으니 기가 막혔다. 지나간 세월을 반주하기에 이것만 한 악기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中


 사실 요즘은 내 속의 묵은 것을 지우기 위해 끼적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워버리지 않기 위해 쓴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 남자를,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사고를 기억하기 위해서 쓴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씩 뭔가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의 죽음과 상처를 마주했을 때,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것들이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익숙해지는 것이 두렵다.


 잠들기 전. 샤워하면서 거울을 본다. 표정 없는 얼굴, 와이프가 어딘지 무섭다고 하는 그 얼굴이 있다.


 슬쩍 웃어 본다. 침울한 표정도 지어 본다.


 영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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