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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pr 19. 2023

아빠, 차라리 날 죽여

 호흡곤란 환자라고 합니다. 위치는 OO면 OO리 O번지.


 새벽 1시 반이었다. 상황의 다급함과 지령을 내리는 이의 조급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목소리. 엉덩이를 걷어차서라도 구급대원을 차고 밖으로 몰아내겠다는 신념이 느껴지는 톤. 상황실의 수보요원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때는 그랬다. 오히려 나는 절반쯤 안심한 상태였다. 구급대 전용 전화기로 신고자의 전화번호가 먼저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수시이용자(주취, 정신병력, 단순이송, 민원제기 등을 이유로 상습적으로 신고하는 이를 통칭)였다.


 전용 전화기의 통화내역을 보니 며칠 전에도 다른 팀 근무 때 신고를 한 이력이 있었다. 그날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고 싶다고 구급대를 불렀으나 단순주취환자는 보호자를 동반해야 한다는 병원 측 주장 때문에 입원을 하지 못했다고 얼핏 들은 것 같았다. 그래도 현장 도착 전까지 늘 혹시나란 게 있기 때문에 열심히 달려갔다.


 도심에서 멀찍이 떨어진 집이었다. 어느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좁고 외로운 길목에 몸 한구석 눈에 띄지 않는 종기처럼 자리한 집. 집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가건물이었다.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구급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썩은 닭똥 냄새가 끼쳤다. 입구엔 망한 왕국의 출입구처럼 꽃덩굴이 타고 올라갈 철제 지지대를 둥근 모양으로 꽂아 두었다. 죽은 줄기와 썩은 잎새뿐이라 이가 다 빠진 노인이 입을 벌린 모양 같았다.


 집안 풍경은 전형적인 주취자들의 그것이었다. 가지런한 건 오로지 술병뿐이고, 안주인지 개밥인지 쓰레긴지 모를 물건들이 검은 비닐봉지와 녹슨 냄비에 죽처럼 담겼다.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담뱃재를 털어대는 바람에 이불에는 작은 구멍이 숱하게 뚫려서 테두리가 검은 눈이 내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과 대조적으로 행복에 겨운 가족사진이 벽에 걸렸다. 이번 신고자의 경우는 아들에 대한 애착 탓인지 아니면 헤어진 아내 사진을 걸어놓기가 민망해서였는지 유독 아들의 사진이 많았다. 한쪽 벽에는 사진이, 다른 한쪽 벽에는 아들이 받아온 오만가지 상장이 금테를 두른 액자에 끼워져 빼곡했다. 신고자는 벌써 집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치고 방 한가운데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다요. 그냥 다. 어눌하게 주워섬기면서 한 손을 뻗어 또 술병을 집었다.

 그만 드세요, 아니, 담뱃불은 또 왜 붙여요.

 그냥 다 아파요.

 어디가 아픈지 말씀해 주셔야 해요.

 술 너무 많이 먹었어요.

 술 깨고 싶으셔서 그래요? 보호자 없으면 입원 안 돼요. 오실 분 있어요? 묻자, 남자는 애먼 전화기를 들어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휴대폰 배경화면에 남자의 딸인지 젊은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러면서 나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그래봐야 달라지는 건 없는데, 같은 전화기라도 다른 이가 전화를 걸면 그걸 받아주리라 상상하는 것 같았다. 전화번호부는 초라했다. 이름으로 저장된 딸, 누나, 애칭으로 저장된 아들. 아내의 전화번호는 없었다. 아들한테는 전화하면 안 된다고 해서 다른 이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새벽 2시였다.

 아드님만 남았어요.

 안 되는데.

 전화 걸까요. 남자는 마치 혼나기를 걱정하는 어린애처럼 눈치를 봤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그리고 한 이십여 분 동안 수화기 건너편에서 탄식과 울음과 포효가 뒤섞인 목소리가 쏟아졌고, 신고자는 고장난 기계처럼 병원으로 와. 올 거지? 병원으로 와. 올 거지? 를 반복했다. 신고자 아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스피커폰이 아니었는데도 목소리가 다 들렸다.

 아빠, 차라리 날 죽여.

 나가 죽으라고?

 아니. 나를 죽이라고. 아빠 손으로.

 병원으로 와. 올 거지?

 내일 갈게. 내일 출근인데. 그냥 때려치고 갈게. 오늘은 그냥 자.

 알았어.

 전화를 끊은 남자는 어딘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술병을 쓱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아들이 온데요.


 남자가 자리에 눕는 것까지 보고 방문을 닫았다. 귀소 하는 길에 잠들어 있을 아이들 생각이 났다. 아주 나중에 다 큰 아이들을 불러 세울 방법이 내가 아픈 걸 보여주는 일밖에 없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돈을 많이 벌어서 손 벌리는 아이들에게 기분 좋게 얼마씩 쥐어주는 편이 더 낫고, 그게 아니면 나이만큼 머리와 가슴에 지혜가 들어차서 아이들이 이런저런 일로 고민할 때 황금 같은 한 마디를 들려주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찾지 않아도 아이들이 고향처럼 아빠를 그리워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아프지 말아야겠다. 아픈 걸 알게 모르게 티 내던 것도 조심해야겠다. 아이들의 고향엔 아픔이 없으면 좋겠다. 늘 보물찾기 하는 심정으로 아빠를 찾는다면, 나도 아이들도 모두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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