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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11. 2023

딸들아, 그때엔 나를 보내줘

Do Not Resuscitate

 근위축증, 정식 명칭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다. 척수신경이나 간뇌의 세포가 서서히 파괴되어 사지의 말단에서 시작한 근위축이 온몸으로 번지다가 결국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병이 연수까지 이르면 종래엔 호흡곤란으로 사망한다. 양키즈의 전설적인 4번 타자 L. 게릭이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루게릭 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병은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남자는 채 일흔을 넘지 않았다. 루게릭 병으로 인해 온몸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목 중간 즈음 절개된 기관에 인공호흡기가 연결되어 규칙적으로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팔팔했다. 팔팔할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 온몸에서 묻어났다.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두 사람 몫의 일을 하고, 어느 날부터 둘이 아닌 홀로 거닌 거리의 이야기를 매일 남편에게 전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녀는 늙은 남편의 탯줄이었다. 아무리 양분을 들이부어도 고집스럽게 삶이 아닌 죽음으로만 나아가는 탯줄.


 구급차로 이동하기 위해 인공호흡기와 집 안의 산소 탱크가 연결된 줄을 분리했다. 그거 떼면 안 되는데! 그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기, 휴대용 산소통 가져왔어요. 염려 마세요.

 아, 죄송합니다. 예민한 환자라서.

 간이형 들것에 남자를 싣자 맥없이 풀어져서 양팔이 자꾸 바깥으로 삐져나왔다. 주워 올리면 툭. 다시 주워 올리면 툭. 움직이는 들것 위에서 줄이 끊어진 나무인형처럼 달그락달그락 춤을 췄다. 잠시 들것을 내려놓고 환자의 양손을 바지 안으로 집어넣자 꼭 공손하게 손을 모은 모양이 되었다. 그게 또 우스웠는지 환자는 한쪽 입가를 아래로 늘어뜨리며 흐으 하고 웃었다. 웃네요, 웃어. 말하는 남자의 아내도 웃었다. 어쩌면 다른 표정은 전부 내다 버리고 웃는 표정만 붙들고 사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둘째는 요새 부쩍 그렇게 묻는다. 돌아가면 어떻게 되냐고. 죽으면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아빠가 위험한 일을 한다는 걸 인지하는 건지, 아니면 어른 눈엔 뵈지 않는 삶과 죽음의 정령 같은 게 아이의 눈에 비쳐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본능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쁜 나이가 되면 잊히는 본능. 사람은 왜 태어나고 죽을까, 죽음 뒤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허공인지 신인지에게 캐묻는 본능 말이다.

 아빠는 잘 모르지. 이날도 나는 같은 대답을 했다.

 나는 알아.

 그래?

 아빠는 돌아가고, 나는 할머니가 되는 거야.

 응.

 내가 돌아가면 아기가 또 태어나.

 응.

 그렇게 되는 거야.

 

 명쾌했다. 온전히 머리로 이해하고 나온 말은 아니겠지만 아이는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내가 걷던 길을 다음 사람이 걷는다. 아이의 눈에 비친 죽음은 너저분한 수식 없이, 발가벗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삶의 이유도 명확했다. 나는 내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이 부끄럽지 않게 살고, 더는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잡은 손을 놓고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움직이지 못하게 된 다리를 억지로 휠체어에 얹거나, 기어서라도 한 걸음을 더 딛기 위해 애쓸 이유가 없다. 남은 길은 남은 사람들이 걸으면 되니까.


 내가 늙거나 크게 상해서 스스로 눈조차 뜨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내 딸들이 억지로 나를 끌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려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사할 준비를 마친 나를 데려다 너희가 끄는 수레에 싣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의사나 장사치들이 자식 된 도리 운운하며 너희의 맘을 무겁게 할지도 모른다. 아버지 숨이라도 붙여 놓으라고 너희를 위하는 척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그런 거 싫다. 시간 아까우니 서둘러 내 손을 놓고 그냥 그때부턴 너희가 내 몫까지 열심히 살면 좋겠다. 내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세상의 모든 멋진 것들을 너희가 대신 너희의 삶 속에 담았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읽는 동안 잊었을까 봐, 혹은 잊어버리고 싶을까 봐 다시 한번 적는다.


 딸들아, 그때엔 나를 보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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