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Sep 05. 2023

뜬장

 개 도축장을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독립영화를 찍던 시기에 촬영 로케이션으로 쓰기 위함이었다. 식당과 협업하는 도축장들은 대부분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넓은 우리마다 도사견이 딱 한 마리씩 들어가 있었고, 콘크리트로 만든 바닥은 주기적으로 물청소를 해서 깨끗했다. 파리가 들끓는 쉰밥이나 먹고 살 줄 알았는데 질이 좋은 사료를 먹었다. 영화를 찍기엔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현실은 영화처럼 잔인하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교외의 시골 마을을 무작정 거닐었다. 하루 꼬박 걸어서 아무것도 못 찾으면 그대로 촬영을 접을 생각이었다. 마을 안쪽으로 한참을 더 들어가니 사람은 없고 마른 덤불이 집어삼킨 빈 건물만 주욱 늘어선 곳이 나왔다.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였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었다. 길은 언덕 너머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길이 끝나는 곳에 건물이 하나 서 있었다.


 세로로 길게 뻗은 2층 건물이었다. 출입문과 창문은 다 떨어져 나가고 벽채만 남았다. 지붕의 십자가만 아니었으면 본래 무슨 용도로 쓰던 건물인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교회 가까이 다가갔다.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악취에 숨이 막혔다. 구멍이 뻥뻥 뚫린 건물 옆면엔 창문 대신 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뜬장이었다. 철망으로 만든 입방체를 다리가 긴 철제 프레임 위에 올려 대소변이 밑으로 떨어지게끔 만들어 놓은 물건이었다. 똥오줌이 엉겨 붙은 우리마다 음울한 표정의 개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개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예배당의 좌우 벽면을 따라 뜬장이 줄지어 있었다. 중앙엔 사람이 다니면서 배변을 치우고 개밥을 던져 넣을 수 있게끔 길이 나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탓인지 갇혀있는 개들의 모습이 더 잘 보였다. 피부병 때문에 거죽이 절반쯤 벗겨진 개, 창자가 항문 밖으로 밀려 나온 개, 얼굴이 썩어서 눈과 코가 내려앉은 개, 개장 안에서 이미 숨을 거둔 개와 함께 사는 개. 등등등. 등등등. 개들에게도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 지옥에 사는 개들은 커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담긴 누가 토해 놓은 것 같은 개밥을 먹고살았다.


 가끔 우울한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그때의 개들이 생각난다. 제 배우자에게 두들겨 맞고 사는 사람, 부모의 학대로 숨을 거두는 어린애, 하소연할 곳이 없어 죽음을 선택한 선생님들. 뜬장에 갇힌 개들처럼 발 붙일 땅이 없는 그들에게 세상은 아직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마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들이 영화보다도 잔인한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현실을 외면하고 산다.




 새 정부 들어서 동물보호단체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얼마 전에는 시청에서 소방서로 공문이 내려왔다. 열악한 환경의 개 도축장에서 사육하는 개들을 이송조치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현장에는 민원을 건 동물보호단체 회원들과 경찰, 소방, 시청공무원까지 동원되었다. 영부인이 대통령 임기 내에 개 식용을 종식시키겠다고 공언했다는 게 피부로 와닿았다. 생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무작정 개 식용을 반대하긴 어렵지만, 그곳처럼 동물학대에 가까운 사육방식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이 나라가 동물의 삶을 염려하는 이상으로 사람의 삶도 염려하고 있는가 문득 궁금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목욕탕 스케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