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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Sep 07. 2023

애가 없었으면 좋았을까

 아침밥 장사를 하는 가겟집이었다. 곰탕인지 해장국인지를 파는 모양이었다. 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구수한 뼈 삶는 냄새가 풍겼다. 2층 건물의 1층은 식당이었고, 2층은 식당 주인 내외가 사는 가정집이었다. 건물 외벽을 따라 좁게 뻗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좌우로 식물은 죽고 흙만 담긴 화분이며 다 쓴 부탄가스통 같은 잡동사니가 빼곡했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침대에 누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정확히는 한쪽 팔다리를 쓰지 못했다. 환자분, 성함이 뭔가요. 묻자, 위혐혇예여 하고 답이 돌아왔다. 편마비에 말이 어눌해지는 전형적인 뇌졸중 증상이었다. 뇌졸중 골든타임은 3시간이지만 이 경우는 3시간을 넘겼을 가능성이 컸다. 자다 깨서 몸의 이상을 발견한 케이스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 말로는 어젯밤 11시쯤 잠들었다고 하니, 출동을 나간 새벽 6시 가까이해서 뇌혈관이 터졌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들것으로 옮기는 동안 아주머니가 두꺼운 점퍼를 남편에게 입히려고 옆에서 부산을 떨었다.

 아주머니, 이리 나오세요.

 밖에 쌀쌀한데.

 구급차 가서 담요 덮어드릴 거예요.

 아저씨가 덩치가 있어서 들것 손잡이를 잡은 양손이 묵직했다. 방을 나서며 얼핏 보니 벽에는 온통 아주머니와 남편 둘이서 찍은 사진이 빼곡했다. 결혼 초기부터 50대 후반에 이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손을 맞잡거나 포옹하고 있는 다정한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에 아이는 없었다.


 걱정했던 대로 계단을 내려가는 게 일이었다. 부비트랩처럼 펼쳐진 잡동사니들을 피해서 내려오자니 몸이 비비 꼬였다. 배에 힘이 들어가서 허리도 삐걱거렸다. 퇴근하면 침 한 방 맞아야겠다 생각하며 아저씨를 구급차 안으로 밀어 넣는데, 보호자로 따라가야 할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건물을 빙 둘러가며 열린 문을 잠그고 있는 아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아주머니! 가스는 잠갔죠?

 네네!

 그럼 됐어요. 빨리 오세요, 급해요!


 구급차를 타고 가는 동안 아주머니 눈엔 그다지 염려하는 기색이 없었다. 병원 가서 치료받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평소와 같은 당신의 건강한 남편으로 돌아오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건 평생을 사랑한 사람에 대한 오랜 신뢰 같은 거였다. 그 사람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옆에 있으리란 믿음이었다. 그리고 이날 아침 아주머니의 믿음은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배신의 위기에 처했다. 아마도 신이 두 손 두 발 걷어붙이고 나서지 않는 한 남편은 예전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터였다.




 이젠 알람이 없어도 새벽에 잘만 눈을 뜬다. 5시 30분. 알람은 6시에 맞춰 놓았지만 대부분 울리기도 전에 해제를 시킨다. 아내와 아이들은 한참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그 뒤에 아침밥으로 무얼 만들까 고민을 마치고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동동동동 발을 구르며 둘째가 안방으로 들어온다. 아빠 팔을 끌어당겨서 팔베개를 만들고 제 목 아래 받친 뒤 눈을 감는다. 손을 들어 오르내리는 작은 가슴을 가만히 두드리면 다시 잠드는 데 채 오 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냥 일어나려다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본다.


 먼 훗날 아내와 내가 늙고 병들면 세상은 굳이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젊고 빛나는 것들이 우주를 가득 채우는 동안 우리는 까맣게 잊힐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다면 그런 미래도 견딜만할 것 같다. 당신과 나를 빼닮은 아이들이 우리가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애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애가 없었으면 좋았을까 상상을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젓는다. 삶은 흙 한 줌으로 스러지겠지만, 삶을 이어가는 아이들이 있어 우리는 허무의 진창에서 허우적대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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